얼치기 계몽군주를 꿈꾸다.
조자룡 헌칼 쓰듯 되는대로 내지르는 것 같아도, 굥의 정책에는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 '120시간 노동'과 '만 5세 취학'은 굥이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아 깨갱하고 꼬리를 내린 정책이다. 만 나이로의 '나이 단일화'는 굥의 정책 중 거의 유일하게 호응받고 있는 정책이다. 그리고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문제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선무당 식 교육정책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위 4가지 정책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숫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능 킬러 문항 배제의 경우는 몇 등급이라는 숫자가 그 핵심이며, 나머지 셋은 말할 필요없이 그 핵심은 숫자다. 이것들을 보면 굥은 그 누구보다도 합리적인 사람이다. 이건 역설이나 비아냥이 아니라 정색하고 하는 말이다. 그 이유는 『우리를 배반한 근대』 '2장 계몽주의의 배반: 계몽이라 쓰고 야만이라 읽는다'에서 따온 다음 인용문에서 밝혀진다. 굥은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들어맞지 않는 요소를 제거해서 합리적인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한 마디로 얼치기 계몽군주를 꿈꾸고 있다.
"계몽의 세계는 무엇보다 신화의 세계와 대비된다. 신화의 세계가 교환과 측정이 불가능한 질의 세계라면 계몽의 세계는 교환과 측정이 가능한 양의 세계이다. 계몽화는 혼란스러운 신화의 세계에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이며, 계몽의 전개는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들어맞지 않는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계몽 및 계몽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개념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먼저 합리성/합리주의를 영어로 ‘rationality/rationalism’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근은 계산이나 수량을 뜻하는 라틴어 ‘ratio’이다. 어떤 대상을 계산하고 수량을 헤아리는 일, 즉 계산 가능성이나 측정 가능성이 합리성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측정에 쓰이는 자[尺]를 영어로 ‘ruler’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지배자’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질서를 영어로 ‘order’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명령’을 뜻하기도 한다. 질서를 부여하고 수치로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주체 또는 지배자의 명령이 필요하다는 계몽의 원리가 그 단어들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18~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도 계몽의 정신은 이성과 합리성과 과학을 통해 진보와 행복을 가져다주어야 옳은데, 인류는 왜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 전체주의 체제와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 그리고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야만의 길로 접어들었을까? 이것이 바로 <계몽의 변증법> 저자들이 지닌 최초의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원인을 계몽 및 계몽주의 그 자체에서 찾았다. 즉, 계몽 및 계몽주의가 실패해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계몽의 원리 속에 야만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임을 꿰뚫어 보았다. 야만은 신화적 가치에 속하는 것으로, 그 핵심 원리는 가부장적인 억압과 지배다. 따라서 계몽의 원리 속에 야만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은, 억압과 지배가 야만의 원리이면서 동시에 계몽의 원리라는 말이다. 저자들은 이를 “신화는 이미 계몽이다”와 “계몽은 신화로 돌아간다”라는 두 가지 명제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