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이 진실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잡설적 고찰
몇 달간 미루던 백내장 수술을 했다. 백내장(白內障)이라... 눈 수정체 안쪽이 하얗게 변하는 장애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갓 천자문을 뗀 사람이 작명한 게 아닌가 싶게 무척 어설픈 이름이다. 백내장 수술이란 흐려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일.
수술결과는 만족스럽다. 세상이 두세 배쯤 환해졌다. 물론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 눈의 수정체가 깨끗해져서 훨씬 환하게 보이는 것일 뿐이지만. 기독교의 창조주도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나서 보기에 좋았다고 한 걸 보면 실제가 어떻든 보기에 좋은 것은 중요하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이것이 이별이래" 유열이 부른 '이별이래' 중 이 구절을 빗대서 말하면,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이것이 백내장 수술의 효과래" (유튜브를 보니 송소희와 고영열이 함께 부른 '이별이래'가 오리지널보다 훨씬 낫다.)
내 눈의 수정체에 문제가 생겨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 이후에도 나는 그 세상을 진짜 세상이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왜곡된 세상이었다는. 그렇다면 내가 안다고 굳게 믿는 것 중에도 어떤 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백내장 같은 생물학적 장애만 장애가 아니라 인식상의 장애도 장애다. 수술하지 않고서는 내가 지금 옳다고 믿는 것들(생각, 가치 등) 중 일부가 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걸 평생 모르고 살아야 하는 건가?
아니, 단 하나의 진실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건지도 모른다. 백내장 수술 전에는 그때 보이는 세상이 진실이었고 수술 후에는 지금 보이는 세상이 진실이다.
자크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따라, 지금 내가 보는 세상,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가치가 곧 진실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수십 년 전에는 백내장의 증상은 있어도 그것이 장애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 들면 당연히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과학의 발달에 따라 장애로 규정되었을 터. 장애 여부는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라는 1천 쪽 가까운 논문을 썼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니체의 말이다. 이 세상은 장애와 장애가 아닌 것,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정상과 비정상, 진짜와 가짜가 온통 뒤엉켜있다. 오래전 신신애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에도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는 가사가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중요한 건 어느 쪽에 객관적 정당성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진실이나 정상으로 해석하는 권력을 갖고 있느냐다. 가령 '바이든'과 '날리면'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입증할 객관적 기준은 없다. 설사 기준이 있더라도 그 기준으로 진실을 확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게 되어있다. 그게 바로 데리다가 말한 '디페랑스(차연)'다. 그러니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어느 쪽이 정당하다고 해석할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가"일뿐이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탈근대로 깊숙이 접어든 건가? 사실/진실/정의 같은 근대의 가치들은 낡았다고 폐기되어야 하나? 이런 게 역사의 발전일까? 이런 내 고민의 일단을 곧 나올 책 <우리를 배반한 근대>에 담았다.
어이쿠, 백내장 수술 잘 끝났다고 말하려다가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쓸데없는 사설을 늘어놓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