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식 묘사법, 이항대립과 대립의 무효화
글로 쓴 다큐드라마,『하얼빈』을 읽고
※이 글은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여문책 펴냄)에 실린 '기자정신에 밀려난 소설가 정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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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역사소설은 팩션[fact+fiction] 일 수밖에 없다. 팩션이란 사실과 허구의 결합인데, 사실의 비중과 허구의 비중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김훈 역사소설의 경우, 전체적으로 허구보다 사실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허구의 비중이 높은 다른 역사소설, 가령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과 구별된다. 이 대목에서 소설가 김훈이 사실과 객관적 기록을 중시하는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역사소설이 사실과 허구의 조합이라고 했을 때, 사실과 허구의 비중을 가늠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의미 있는 허구적 인물의 설정 여부다. 거의 모든 인물이 허구인 『토지』나 『태백산맥』과는 반대로 김훈의 역사소설에는 허구적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예컨대 『칼의 노래』의 경우 여진(女眞)이라는 여종이 등장해서 이순신 내면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한산성』의 경우 날쇠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개입해서 사건의 전개 상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날쇠는 완전히 허구적 인물이지만 여진은 최소한의 사실적 근거가 있기는 하나 허구적 요소가 매우 강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하얼빈』의 경우 이런 의미 있는 허구적 인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허구적 인물이 등장하기는커녕 소설이 끝난 후에도 ‘후기·주석’이라는 이름의 장을 따로 두고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나 관련 사건들의 배경담·후일담을 사료에 입각해 보충해주기까지 한다. 소설 본문에서도 지명이나 인명의 한자를 병기하거나 간혹 괄호 안에 해설을 써넣기도 한다. 이쯤 되면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의 정체성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정도다.
이렇듯 『하얼빈』은 김훈 역사소설 중에서도 사실의 비중이 가장 높은 작품이다. 어쩌면 팩션이라기보다 다큐멘터리 드라마(다큐드라마)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다큐드라마는 사실을 바탕으로 삼되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일부 요소에, 사실로부터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허구적 요소를 끼워 넣음으로써 사실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다큐멘터리의 한 종류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은 다큐드라마의 정의에 비교적 잘 부합한다. 다만 영상이 없는, 또는 글로 쓴 다큐드라마라고 할까.
그런데 『하얼빈』을 포함한 김훈 역사소설의 매력은 허구적 서사가 아니라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없는 묘사에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훈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확인되지 않은 빈틈을 사실인지 허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그러나 다분히 사실일 것 같은, 아니 어쩌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묘사로 메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독특한 묘사 방식이다. 그의 묘사 방식 중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이항 대립의 팽팽한 긴장을 화자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하나로 합치면서, 그 대립 자체를 중재하거나 무효화한다는 점이다. 『하얼빈』의 다음 인용문을 보자.
"안중근은 몸속에서 버둥거리는 말들을 느꼈다. 말들은 탄창 속으로 들어가서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가 총밖으로 나와서 긴 대열을 이루며 출렁거렸다. 말은 총을 끌고 가려했고, 총은 말을 뿌리치려 했는데, 안중근은 마음속에서 말과 총이 끌어안고 우는 환영을 보았다."
이렇듯 말과 총은 안중근의 몸과 마음속에서 하나로 합쳐지며 대립이 중재되고 무효화된다. 안중근에게 말은 곧 총이고 총은 곧 말이다. 즉 이토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이토와 전 세계인을 향해 법정에서 말로 이토의 만행을 응징하는 행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항 대립을 받아 안으며 무효화하는 방식의 묘사는 김훈의 소설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가령 『칼의 노래』 중 한 대목을 보자.
"수(守)와 공(功)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이순신의 칼은 수세와 공세를 하나로 받아 안으며 하나로 합친다. 이순신에게 임진년의 전쟁은 이겨도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두어도 조정의 임금과 대신들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자신의 목을 겨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훈은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 내면의 갈등과 번민을 이런 독특한 묘사를 통해 표현했다. 그런 묘사 방식이야말로 사실에 충실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만드는 김훈 식 문체의 힘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얼빈』에서 사실의 전개에 중점을 둔 탓에 이런 독특한 문체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