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숨은 신>
내 신산한 삶이 시작하는 지점에 놓여있던 책
루시앙 골드만의 <숨은 신> 초판본을 어렵사리 구했다. 오래전 헤어졌던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그래서인지 누런 종이에 박힌 작은 구형 활판 글자들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서지사항을 확인해보니 발행일은 1980년 5월 30일이다. 내가 처음 읽은 건 아마 1982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여러 겹의 갈등 속에 휘말려있었다. 전공인 경제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학과를 얼씬거렸고, 운동권 서클에서 나온 다음에도 여전히 주변부에서 맴돌았다. 군대냐 대학원이냐, 대학원이면 전공은 뭐로 하냐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 아닌 것이 없었던 그때, 우연히 접한 <숨은 신>은 나를 문학비평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그 이후 내 신산한 삶이 시작하는 지점에 바로 이 책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다시 그 책을 읽어보니, 지금도 읽기가 만만치 않지만 그 당시 지적 능력으로는 더군다나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의 문해력이 더 뛰어났으려나? 이 책에 빠져든 이유는 일차적으로 작품구조와 사회구조의 상동성을 밝혀내는 그 마법 같은 논증의 과정 때문이었지만, 그것 말고도 분석 대상인 <팡세>와 저자인 파스칼이 속한 법복귀족의 비극적 세계관을 접하며, 나는 당시 내가 처했던 갈등상황과의 동질감을 느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전하고 지혜와 통찰력을 얻도록 도와주지만, 이처럼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루시앙 골드만(Lucien Goldmann, 1913-1970)
“장세니스트들은 지상에서의 시도를 전적으로 배제하면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신을 추구하는 것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은 숨은 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숨은 권력 앞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으되 그것에 매달리는 일부 법복귀족의 역설적 상황과 완전히 동질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