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그리고 조국 교수

장준하 48주기를 맞아 떠오른 두 가지 생각

by 까칠한 서생

2023년 8월 17일은 장준하 선생이 의문의 등산사고로 사망한 지 48년이 되는 날이다. 2013년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에서 ‘타살 후 추락’이 사망원인임을 밝혔지만, 누가 왜 살해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배후에는 누구나 짐작하듯이 바로 ‘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읽은 그의 자서전 <돌베개>를 기억하며 두 가지를 짚어본다.


첫째, 장준하 선생은 민족주의자이면서 보수주의자였다는 점. 임시정부에서 좌우대립이 격렬해지자 계속 이렇게 싸우면 다시 일본군에 들어가 임시정부를 폭파하겠다고 일갈했다는 일화, 사회주의자였던 김원봉을 경멸했다는 기록, 반공주의 성향의 서북출신 기독교인이라는 점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 우리나라의 이념지형에서 민족주의&보수주의라는 위치는 매우 희귀하다. 7,80년대만 해도 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민족주의자는 대부분 진보적이고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사대주의자 아닌가. 사회가 다변화되고 이념이 퇴조했다지만 실은 이념의 스펙트럼이 매우 좁아졌다.


둘째, 정적에 대한 탄압의 방식이 불법적/생물학적 테러에서 합법적/제도적 응징으로 변했다는 점. 군사독재 시기에는 대통령직속 정보기관이 비밀리에 생물학적 위해를 가하고 사건을 뒤덮었다면, 검찰독재 시기에는 검찰이 수구언론과 손잡고 합법적으로 위해를 가하고 사건을 당당하게 공개한다. (편의상 합법이라고 했지만 실은 합법을 가장한 불법일걸?) 다만 어느 경우에나 당사자와 가족을 멸문지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도륙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장준하 선생 48주기를 맞아 왜 조국 교수가 떠오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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