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연정사에서 보낸 하루

서애의 올곧은 삶을 생각하며

by 까칠한 서생

1. 옥연정사에서 1박 했다. 서애 유성룡 선생(1542-1607)이 은퇴 후에 공부도 하고 제자도 가르치던 곳이다. <징비록>도 여기서 썼다. 내가 머문 곳은 옥연정사 중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치던 옥연서당. 400여 년 전 서애 선생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들리지야 않겠지만, 혹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있는지 한참을 살폈다.


2. 서애 선생은 영의정에서 물러난 후 바로 이 집을 짓고 기거한 게 아니었다. 돈이 없어 엄두도 못 내다가 높은 학문을 이어가기를 원하는 어느 승려의 도움으로 겨우 마련했다고 한다. 도움을 준 사람이 지방의 관리나 부호 또는 유자가 아니라, 당시 천대받던 승려라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권개입에 따른 보상이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하기야 이권에 개입했다면 돈이 없었을 리도 없겠지. 판서와 정승을 거치며 작은 집 한 채 지을 돈도 못 모았을 만큼 깨끗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3. 식, 행, 촌... 이런 끝자를 가진 얼치기 반푼들이 신임 판서 교지를 받게 되리라 한다. 끝에 '수'자를 가진, <경국대전> 첫 문장도 모르는 정승의 뻘짓은 한심함을 넘어 이젠 민망할 정도다. 그들의 깜냥은 서애 선생의 새끼발가락에도 닿을 수 없을 것이다.


4. 조선조 500년 동안 인조, 고종과 함께 가장 무능한 왕으로 꼽히는 선조에게도 서애처럼 지와 덕을 갖춘 올곧은 신하가 있었다는 건 엄청난 아이러니다. 무능하면서도 사악하기까지 한 지금의 '왕'(손에 왕자를 쓴 그 작자)에게도 부디 서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애 반만이라도 되는 신하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면 택도 없는 소리겠지.


5.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고? 그런 웃기는 소리 좀 그만하자. 내가 보기에 역사는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단재 선생께는 죄송하오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틀렸다. 역사를 잊고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대한 이 박복한 민족에게도 이렇게 미래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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