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른 ‘저들’의 역사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by 까칠한 서생



1.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치의 책임을 히틀러에게만 돌리지 않았다. 선전상 괴벨스는 물론, 아이히만과 같이 그것이 악인지도 모르고 악을 저지른 무수한 공직자들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괴벨스 등 히틀러의 최측근들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주군과 함께 자결했고, 아이히만 등 부역자들은 어쩔수 없었다고 항변하다가 사형당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다른 것이, 한두 명의 원흉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우고 마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그 주변에서 기생하며 꿀을 빨아먹던 기생충들은 성긴 그물망을 버젓이 빠져나가곤 했다. 괴벨스처럼 자결하진 않더라도, 주군을 잘못 모신 책임을 지겠다는 놈 하나 보이지 않는다.


2. 한일병합의 책임은 이완용이나 을사오적에게만 돌릴 수 없다. 일진회 따위의 친일단체는 물론 일본이 지배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많은 백성들도 병합의 지지자이거나 방조자로 직·간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유신과 군사독재의 책임을 박정희·전두환과 소수의 (신)군부세력에게만 돌려서도 안 된다.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헌법학자를 비롯해 자발적인 어용학자나 해바라기 형 관료집단과 군부통치를 당연시하던 수많은 국민들도 어떻게든(혼자말로 반성을 해서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


3. 하지만 친일 부역자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의 도움으로 이완용 등 을사오적에게만 책임을 덮어씌우는 데 성공했다. 유신과 군사독재 부역자들은 산업화세력이라는 명분으로 책임을 죽은 박정희에게만 던져놓는 데 성공했다. 이명박근혜 국정농단의 주역들은 윤석열의 도움으로 사면·복권되어 거의 대부분 회생했다. 지금, 능력도 자질도 인성도 그 어느 것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얼치기 반푼이 삼총사가 국무회의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지난 역사를 보며, 자신들이 아무리 뻘짓을 해도 책임을 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섰을 것이다.


4. 이재명 대표는 단식 중 카메라 앞에서 화무십일홍이라는 말과 함께,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권은 반드시 심판받았다는 것이 역사이고 진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조금 실망스럽다.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비해 너무 안이한 태도로 보이는 데다가, 이 말 자체도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심판받지 않은 정권’도 있었거니와 ‘심판받은 정권’에서도 심판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심판을 받았더라도 금세 회생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버젓이 떵떵거리고 산다. 그것이 바로 ‘역사이고 진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그 부당한 정권의 부역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문재인의 모가지를 따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한 신원식 국방부장관 내정자


5. 진보적인 인문학자 고 신영복 선생은 인조반정 이후 우리나라의 지배층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저들’이 아는 역사는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민중이 승리한 역사를 진리라고 확신하듯, 저들은 지배층이 한번도 바뀌지 않은 역사를 진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그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책망하지 말자. 사법고시 1차 과목에 아무리 ‘한국사’가 있었다고 해도 그때 한 공부는 시험용일 뿐이었다. 법조계 선배나 집안 어른에게서 배운, 아니면 이너서클 안에서 들리는 풍문으로 듣는 역사가 맞다고, 자신들 같은 족속들이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는 게 바로 진리라고, 이 원칙은 17세기초 인조반정 이후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굳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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