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의 뿌리를 생각한다' 칼럼을 읽고
1. 말로든 글로든 유시민의 장점은 뛰어난 추상화(범주화) 능력이다. 어떤 현상이든 순식간에 다른 비슷한 현상과 묶어서(즉 범주화해서) 개념을 만들고 그 개념 속에서 그 현상을 분석하면, 상대방은 꼼짝없이 당하곤 한다. 예전에는 그 능력을 오성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냥 이해력이라고도 한다. 그의 이 능력은 순발력이 요구되는 토론에서 특히 더 돋보인다. 토론에서 그의 설득력이 남다른 이유다.
2. 물론 그 능력은 글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한 달에 한 번쯤 '민들레'에 쓰는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쓴 "육사의 뿌리를 생각한다"에서는 육사의 뿌리를 독립군과 광복군에서 찾아야 함을 논증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지만 이 칼럼의 핵심은, 윤통은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늙은 마오쩌뚱처럼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심히 부족한 자이므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탓에 홍범도동상 이전건 등 작금의 이슈들이 벌어진 것이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대통령이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게 방치하면 대한민국과 한반도에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묻고 있다. 이번에도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범주화한 다음, 윤통을 그 범주 속에 위치시켜서 해석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3. 내가 보기에 유시민이 이렇게 심각하게 보수세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건 노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는 그때 이후에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나라가 안 망한다"라고도 했고,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해서 "사악한 동시에 지극히 무능한 자가 권좌에 앉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다"라고도 했다. 또 (대의) 민주주의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발명품이라면서, 정밀하게 짜인 제도를 돌리는 과정에서 큰 비극을 피해나가는 길을 찾아내는 게 민주주의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4. 유시민은 야당/국회/법원/시민단체/시민들이 그런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어느 정도라도' 제어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이 칼럼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는 그간 그렇게 당당하게 민주주의의 자정능력을 신뢰하던 태도에서 물러나도 한참을 물러난, 심히 약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동안의 신념을 슬그머니 270도쯤 바꾸었다. 아무런 해명도 없이 태도를 바꾼 그의 행태는 좀 비겁해보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도 지금의 사태를 그만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진심 어린 우려에 공감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