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의 침묵
1.
말은 번지르르한 헨치! 영국 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며 민족이 억압된 상태는 은폐하고 있다.
헨치는 불 앞에서 푸짐한 가래침을 뱉는 바람에 불을 꺼뜨릴 뻔한 인물.
불이 항의하듯 치익거렸다는 묘사로 봐서 조이스는 헨치를 혁명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인물로 여긴 것 같다.
2.
“O, I forgot there’s no corkscrew! 코르크따개가 없는 걸 잊었네!
cork는 (감정 등을)억제하다는 의미가 있다.
앞서 읽었던 Clay 에서도 마리아 동생 ‘조’가 호두까개와 코르크따개를 찾아 오라고만 하고 끝내 찾지 못하고 끝난다. 딱딱한 호두껍질을 깨는 것, 꼭 닫힌 병마개를 여는 것 모두 자유에 대한 은유인 것 같다.
국민당 당원들은 코르크따개를 근처 오패럴네(O'Farrell은 '용맹한 사람'을 뜻하는 게일어)에서 빌려오라고 한다. 잭노인은 코르크따개를 잠시 빌려 맥주 네 병을 따고 돌려준다.
마치 파넬에 의해 잠시 영국으로부터 몇몇 자치권을 얻었다 뺏긴 모습일까?
그렇게 자유를 뺏기고 나서도 마비되어 “O, I forgot there’s no corkscrew! 코르크따개가 없는 걸 잊었네!라고 한다.
국민당 당원들은 자신들이 억압당하고 있는 것조차 잊고 있다. 혹은 알면서도 은폐하려 한다.
헨치가 잘난척하며 생각해낸 건 난로의 열기를 빌려 병마개를 따는 것.
영국 자본의 힘으로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그의 비열한 태도와 동일하다.
3.
아일랜드 자치를 위해 만들어졌던 국민당 당원들의 위선과 무력한 겁쟁이의 모습이 침묵, 사소한 행동과 말투로 묘사돼 있다.
침묵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를 관찰해보면 자신들의 기만을 얼핏얼핏 느끼는 에피파니의 순간으로 보인다.
침묵 전후로 나타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 오코너가 '티어니가 어쨌거나 돈이나 들고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한 이후 The three men fell silent
- 올드잭이 '그때가 참 좋았지. 그땐 뭔가 활력이 있었어' 이후 The room was silent again.
- 하인즈가 비아냥대며 '그 왕이 오면 다 잘되겠지' 말한 이후 퇴장할 때 헨치와 노인 said nothing.
- 파면됐지만 정치적 실세들과 접촉하는 키온신부를 헨치가 배웅하고 돌아 온 후 There was silent for a few moments.
- He was silent for two reasons. 크로프턴의 침묵인데 그는 보수당 당원이었다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국민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동료들이 깔보기 때문이라는 것. 이 설명 후 병마개 소리가 미안한듯이 (apologetic) '폭' 소리를 내며 열리는 이유도 수치심을 느끼는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민족주의자의 후보 당원들임에도 정치적 신념보다 돈이나 바라듯이, 영국 왕을 환영해야 아일랜드의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는 박정희의 경제계획 논리였던 '민족자본'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민족주의자는 '민족자본'에서 '민족'을 보고, 보수주의자는 '자본'을 보면서 이 반대 진영을 묘하게 통합시킨 논리....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에 마비돼 모순된 자기기만이 드러나는 어색한 침묵의 순간들!
소리 없는 침묵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지 보여준 또 놀라운 작품이다.
파넬을 기리는 하인즈의 시 ‘modern hypocrites! Shame on the coward!’
현대의 위선자들!...부끄러워라 겁쟁이들!...그들의 기억에 영원한 치욕 있으라!
암송이 마치자 침묵... 이후 박수 갈채...다시 침묵... 하인즈는 술 권하는 소리도 못 듣는다.
오코너는 훌륭하다며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고 담배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헨치는 옆에 있는 크로프턴을 향해 굳이 외치면서 ‘근사하지 않아?’ 하고 호들갑 떤다.
소설 중간에 하인즈가 ‘영국왕이 오면 다 잘 되겠지’ 비아냥하며 퇴장할 때
침묵 후 오코너가 갑자기 ‘잘가 조’했던 요란한 외침과 같다.
그들의 위선이 언뜻 언뜻 드러날 때마다 어색한 침묵...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호들갑스러운 외침 ...
폭! 하인즈의 맥주 마개는 열렸지만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얼굴은 수치로 붉게 달아올랐고,
오코너는 부끄러운 감정을 감추려고 담배종이를 꺼내며 말한다.
이 어색한 공기를 가르며 소리치는 헨치. “Isn’t that fine? What?”호들갑으로 덮어버린다.
이 암울하고 마비된 희망 없는 정치판을 묘사하면서도 조이스는 결코 재치를 잊지 않는다.
Crofton said that it was a very fine piece of writing.
Crofton의 거짓말이면서 Joyce의 작품에 대한 진실이기도 한 very fine piece of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