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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우정은 빛나고 감사는 깊어지고

굿바이, 영국

by 시에나


귀국을 앞두고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거처였다. 이삿짐을 빼고 나면 당장 머물 곳이 없었다. 서둘러 에어비앤비를 알아봤지만, 우리가 살던 동네는 주거지역이지 여행지가 아니라서 빌릴만한 집이 마땅찮았다. 그렇다고 멀리 가자니 곧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나고 애들 학교도 개학하는데. 금방 귀국하겠지만 작별 인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터라 학교 가까이 있고 싶었다. 이래저래 머리가 아프던 차에 영국교회 목회자이자 동네 친구인 샤메인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잠시 내 사정을 듣더니 특유의 활기차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인, 왜 에어비앤비를 알아봐? 우리 집에 빈방이 두 개가 있어. 하나는 너희 부부가 쓰고, 하나는 아이들이 쓰면 되겠다. 너희 가족만 쓸 수 있는 화장실도 따로 있어. 여기 있으면 애들 학교도 보낼 수 있잖아. 우리가 큰 집에 사는 이유는 이럴 때를 위한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우리 집으로 와. 너희가 한국에 갈 때까지 얼마든 있어도 돼.”


남편 팀과 상의도 없이(사실 팀은 이럴 땐 언제나 예스! 란다.) 먼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무작정 자기 집에 오라니. 갑작스러운 제안에 생각해보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로 불편하지 않을까, 민폐는 아닐까 잠시 망설였지만, 딱히 대안도 없고 선뜻 자기 집을 내준다는 친구가 고마워서 우리도 예스! 이번에도 사랑의 빚을 지기로 했다. 홈스테이 첫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너무나 예쁘게 꾸며진 방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환호성에는 일주일간의 호텔 생활 뒤 이제 아이들과 비좁은 방 하나에서 뒹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다.


선뜻 숙식을 제공해준 친구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루를 ‘한국의 날’로 정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점심은 가볍게 김밥과 라면으로,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은 저녁 식사 메뉴는 불고기와 해물파전, 된장국과 김치로 준비했다. 우리 집 부엌도 아니고 양념도 제대로 없어 주로 시판 요리에 약간의 터치만 더 했을 뿐이었지만 모두 감탄하며 즐겨주었다. 처음 접해보는 한국요리가 낯설 법도 한데 싹싹 비워지는 접시를 보니 우리도 뿌듯했다.


친구네 머물면서 가장 좋았던 건 아이들을 재운 뒤 시작되는 어른들의 대화시간. 어느 날은 와인을 앞에 두고, 어느 날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해결되지 않은 가족문제, 정답이 없는 부모 노릇, 교회와 신앙생활 등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더듬거리는 영어로, 행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는 사이 이야기는 매일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차원 더 깊은 우정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순조롭게 출국했다면 얻지 못했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다 드디어 음성 확인서를 받아 들던 날 저녁, 샤메인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교회 식구인데 친구 가족이 영국살이를 다 정리하고 호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PCR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 나왔단다. 돌아갈 집도 없고 호텔도 갈 수 없는 딱한 처지를 들은 샤메인은 이번에도 흔쾌히 “지금 손님이 있는데 내일모레면 떠나니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옆에서 들으며 어찌나 놀랐는지. 가까운 지인도 아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을 게다가 코로나 양성이라는데 어떻게 선뜻 오라고 할 수 있을까.


전화를 끊은 뒤 샤메인과 팀은 집 가운데 문과 통로를 완전히 막고 그 가족만 쓸 수 있는 방과 부엌, 화장실을 내주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면 전염 가능성을 차단하고 서로의 안전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겠다고. 이번에도 팀은 난색을 표하기는커녕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기쁘다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친구의 친구는 좋은 사람이니까.”


‘친구의 친구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참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이번에도 놀라움과 감동이 마음에 번졌다. 과연 ‘나눔’이란 가치가 체화되어 있는 샤메인 가족다운 울림 있는 한 마디였다.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샤메인 가족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쉬운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좋은 마무리가 있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예정대로 출국하는 것과 온 가족이 차례로 코로나에 걸리고, 일정이 다 엉키고 기약 없이 미뤄졌지만, 놀라운 사랑과 환대를 경험한 지금. 혹 선택할 수 있다면 둘 중에 무엇을 택하겠냐고. 남편은 막막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편이 더 좋았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


살다 보면 고난이 올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우정이 빛을 발하고 감사는 더 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값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함께 다짐했다. 시련은 우리네 삶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갖게 해주는 기회일지 모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리고 친구에게 배운 대로 우리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되자고.


“우리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에 곧 착륙합니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린다. 영국은 이제 정말 안녕,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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