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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an 27. 2022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

영국 코로나 확진과 그 이후



  크리스마스 방학을 3일 앞둔 일요일 아침이었다. “엄마, 나 어지러워요.” 큰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말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따끈했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느낌. 일단 집에 준비해둔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다. 시험 용액이 리트머스지를 적시고 빠르게 번져나가는 동안 마음속으로 ‘제발... 제발...’ 하고 외쳤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흐릿하게 보이는 두 줄. 당시 영국 하루 평균 확진자는 5만 명. 코로나 상황이 급속도로 심각해지고 주위에서도 확진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우리 차례가 올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양성이구나. 인제 어쩌지?’


  남편과 엄지손가락만 한 키트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사실 그간 집에서 검사할 때마다 늘 한 줄이어서 효과가 있는 건지 미심쩍어했는데 정말 두 줄이 뜨긴 뜨네. 둘이 마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일단 음성이라 즉시 선율이를 방 하나에 격리하고, 집 안에서 마스크를 꼈다. 아이는 처음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동생의 방해 없이 방 하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어 좋아하는 눈치였다. 오후엔 온 가족이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소로 가는 차 안에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오늘이 당분간 마지막 외출이 될 것이었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영국은 이미 코로나가 감기처럼 만연해진 터라 특별한 조치도 규제도 없다. 이곳에서 계속 산다면야 10 자가 격리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귀국해야 하는 . 당장 다음  금요일에 이사가 잡혀있고, 그다음  금요일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무래도 연기가 불가피해 보였다. 미리  사실을 알려야겠다 싶어 남편은 회사와 이사업체, 나는 부동산과 청소업체에 바삐 전화를 돌렸다. 4일이나 되는 크리스마스 연휴가 아니었으면 조정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연신 죄송하다고 화면 너머로 머리를 조아리면서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물려있는 일정을 겨우 변경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화요일 새벽, 선우와 자고 있는데 남편이 급히 나를 깨웠다. “빨리 나와! 선우도 양성이래!”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지? 둘째도 양성이라고?’ 잠이 덜 깨서 멍한 와중에 ‘이때까지 같이 먹고 자고 했는데 지금 와서 격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며칠간 홀로 격리하며 슬슬 지루해진 녀석은 동생과 다시 같은 방을 쓰게 되자 신이 났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동시에 앓는 것도 나쁘지 않지 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과 서로 우리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며 공연히 다짐했다.


  그날 오후, 평소와 다르게 목이 살짝 간질거리길래 자가 진단 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음성. ‘아직은 백신이 버텨주고 있구나!’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왠지 찜찜한 마음에 저녁 시간 검사 키트를 쓰레기통에 넣기 전에 다시 자세히 봤더니 아니, 아주 희-미하게 두 줄이 떠 있는 게 아닌가. “어어, 이게 뭐지? 아까와 다르잖아?” 순식간에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남편은 더 이상 일정 변경은 어렵다며 그냥 PCR 테스트를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어려워도 정공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PCR을 받겠다 맞섰다. 서로 다독이던 부부는 이제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갈려 상대에게 날을 세웠다. 지난 며칠 인내심을 끌어 모아 버티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감정의 둑이 와르르 무너진 날이었다.


  결국 수요일 오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음 날 나도 확진 통보를 받았다. 이제 우리 집 상황은 3:1. 집 안에 확진자 수가 더 많아지면서 남편이 거꾸로 방에 격리하게 되었다. 그는 회사에 너무 죄송스럽다고 자기만은 걸리면 안 된다며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내내 깨끗하게 한 줄이 나오던 그는 부스터 샷을 맞기 전날 혹시나 하고 해 본 자가 진단 검사에서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며칠 사이에 하루 확진자는 10만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 “코로나에 안 걸리는 게 현재 영국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처럼 결국 우리 가족 역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장렬히 패배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모두 증상이 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째는 반나절 미열과 두통이 있다가 곧 괜찮아졌고, 둘째는 무증상이었다. 나와 남편 역시 백신 덕분인지 비교적 가볍게 넘어갔다. 내 경우는 처음엔 식욕이 없어졌고 약한 기침이 있다가 후각 미각 상실이 왔다. 남편이 2층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내려왔길래 봤더니 압력밥솥 바닥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밥하는 내내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전혀 몰랐으니 처음 겪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남편은 몸살 기운으로 며칠 힘들어했다. 하루 세 번씩 타이레놀을 먹으면서 재택근무 시간을 버텼다. 다른 증세가 없었기 때문에 근육통이 사라지자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때까지 괜찮았는데 왜 하필 지금일까? 진작 걸렸으면 좀 나았을까...’ 처음엔 당황스럽고 원망도 되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 가운데 분명한 유익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영국을 떠나는 게 힘이 들어 매일 울고 있었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3년간 마음을 줬던 영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인사하러 갈 때, 정든 집을 떠날 때, 매일 보던 친구와 헤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하루하루가 가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마음 정리가 싹 되었다. 어떻게 떠나나 걱정했는데 “제발 무사히 갈 수 있게만 해 주세요!”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평소엔 불평이 많은 나지만 막상 큰일이 닥치니 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특히 격리기간 중 주위 이웃들에게 받은 도움은 평생 기억할 감동으로 남아 지난한 시간을 버텨낼 힘을 주었다. 불행이 휩쓴 자리에도 친절은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피운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인도 속담에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천성이 계획적이고 그대로 되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 부부. 본사 발령이 나자마자 매일 밤 회의 모드로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지워가던 우리를 신은 어떻게 보셨을까. 과연 우리를 보고 웃고 계셨을까. 영국에서 3년간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이제 귀국만은 순탄하길 바라고 있었는데 역시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었다. 귀국날을 코 앞에 두고 마지막에 코로나라니!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인생은 더 흥미진진한 거겠지. 그래도 거참! 다음엔 혼자 웃지 마시고 같이 웃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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