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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울 메이트에게

내겐 ‘자매의 나라'가 된 터키

by 시에나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 그러니까 영국에 간 지 6개월쯤 되던 때였다. 당시 둘째 선우는 어린이집 적응 문제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말이 안 통하니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 원장 선생님 맨디에게 상담을 하자 선우와 성향이 잘 맞을 것 같은 아이가 있다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이름은 오잔, 터키에서 온 남자아이고, 어린이집에 온 지 일주일 남짓 되었다고 한다. 평소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믿음직스러운 맨디의 말이라 이름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다.


“네가 오잔이구나!”


며칠 뒤 하원할 때 그 아이와 엄마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언제 한번 플레이 데이트를 하자고 했더니 그 아이 엄마가 대뜸 혹시 시간 괜찮으면 자기 집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지... 지금…? 남의 집에 가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방문 약속을 잡는 영국 문화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초대라니. 살짝 놀랐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지. “그래요, 좋아요. 가요!” 내 말에 신난 아이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만치 깡충깡충 뛰어가는 뒷모습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살림만 갖추어진, 소박하나 잘 정돈된 집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터라 제대로 된 재료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손 빠른 그녀가 휘리릭 차려낸 파스타는 참 맛있었다. 아이들은 햇살이 잘 비치는 정원에 앉아 블록 놀이를 시작했다. 말도 안 통하는 애들이 작은 실랑이 한번 없이 어찌나 잘 노는지. 두 아이의 평화로운 모습에 엄마들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둘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던 맨디의 말이 맞았다. 그날 이후로 영국을 떠날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오잔은 선우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으니까.


아이 친구 엄마와 관계를 맺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려야 하지만 엄마들끼리 통하는 점이 없다면 관계가 길게 유지되지 않는다. 반대로 엄마들끼리 아무리 좋아도 아이들이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한다면 자주 가까이 지낼 수가 없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국땅에서 잘 맞는 동네 친구를 만나다니 이건 더없는 행운이다.

사실 아슬리와 나는 성격이 정반대에 가깝다. 첫 만남에 선뜻 자기 집에 초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아슬리는 시원시원한 대장부 성격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도 아니건만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다. 씩씩하고 다정한 그녀가 해준 터키시 디너를 먹으면서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또 밥)’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호사를 누렸다. 타국에서 남이 해준 음식은 그 자체로 위로이자 치유였으므로 나도 그 기운을 받아 씩씩하고 다정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으니 덤벙거려서 학교 행사나 준비물 같은 건 놓치기 일쑤. 나는 손도 느리고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자신 있다. 아슬리는 내가 개인 비서 노릇을 톡톡히 할 때마다 “You are my lifesaver!”를 외쳤다. 더 이상 내 정신머리를 탓하며 자책하지 않게 되었으니 우리의 다름이 서로에게 보완이 되었던 것 같다.


점점 더 나빠져가는 고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영국으로 이민을 선택한 아슬리. 남편의 갑작스러운 주재원 발령으로 몇 년간 살러 오게 된 나. 각자 사정은 달랐지만 둘 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해외 생활이었기에 서로에게 깊이 기댔다. 학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 살짝 늦더라도 전화 한 통이면 내가 찾을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열쇠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왔을 때(그렇다, 열쇠! 영국에는 번호키라는 신문물이 왜 도입이 안 되는가.) 무작정 찾아가도 언제든 싱긋 웃으며 맞아줄 이웃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매달 돌아오는 중간 방학(halfterm), 여름과 겨울 방학도 두렵지 않았다. 어디 근사한 곳을 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늘 처음 가는 것처럼 오잔네 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건 그 집 아이들, 오잔과 딜라일라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그저 서로로 충분했다.


한낮의 열기가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그녀가 불렀다. 함께 보낸 수없이 많은 보통날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여름날 함께한 추억이다. 영국에서는 드물게 35도가 넘는,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정인, 뭐해? 오늘 너무 덥다. 우리 수영장에 물 받아놨어. 애들 수영복만 챙겨서 얼른 와!” 전화를 끊고나면 곧장 그 집으로 출동했다. 아이들은 그대로 물에 텀벙 뛰어들고, 깔깔거리는 웃음을 배경음악 삼아 함께 피자를 만들었다.한낮의 열기가 식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그녀가 불렀다. “정인, 이리 와 봐. 대야에 물 받아놨어. 차 한잔 마시면서 발 좀 담가봐." 고운 분홍빛의 목욕소금을 풀어 넣은 대야와 아직 따뜻한 차를 보니 울컥했다. 누가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어줄까. 아슬리,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언젠가 국적도 언어도 종교도 문화적 배경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서 만나 이토록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을까, 문득 신기하다고 했더니 “언어나 국적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너 같은 친구는 터키에서도 만난 적이 없는걸.”이라는 그녀. 그런 나의 아슬리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의 슬픔과 아쉬움은 이루 다 쓸 수가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매일 나의 빈자리를 마주하며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부디 그녀의 일상이 좀 더 견딜만한 것이 되기를, 우리가 함께한 추억이 힘이 되기만을 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아이유가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의 대표곡을 ‘마음’이라는 곡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노래는 자기 안에 여러 모습 중에 가장 좋은 부분만 뜰채로 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아낀다고.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아슬리를 생각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지. 나의 가장 좋은 모습을 봐주는 사람, 스스로 엉망이라고 생각할 때도 변함없이 믿어주는 사람이 내게도 있다고. 비록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런 사람이 지구 반대편이나마 존재한다는 게 큰 기쁨이라고. 좋은 친구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그녀를 통해 배웠다.


아슬리가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를 듣는다.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있어요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영영 살아 있어요.


- 아이유, 마음


얼마 전 그녀의 생일. 가져다줄 때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던, 우리가 애정하던 브랜드의 맥주와 잔 세트를 집으로 보냈다.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어.…’라고 쓴 카드와 함께. 마침 이른 더위에 수영장을 설치했다고,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이 너무 그립다고, 선물을 받으니 네가 곁에 있는 것 같다고 기뻐하는 아슬리를 보니 내 마음에도 반짝, 하고 작은 불빛이 켜진다. 영국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곳이 터키 사람의 집이 될 줄은 가기 전에는 미처 몰랐지. 여기 너의 집이 있으니 언제든 오라고 하는 친구에게 나는 또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만다. 다시 꼭 갈게. 기다려줘 나의 자매, 나의 소울메이트, 나의 아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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