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의 중심에는 학교가 있었다

영국 공립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어 발견한 것들

by 시에나


처음부터 이 학교를 원했던 건 아니다. 집 앞에 있는 가까운 곳을 두고 차로 십여 분을 빙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마뜩잖았다. 한국이라면 전입신고 후 집 앞에 있는 학교로 배정받으면 그만이겠지만, 이곳은 영국. 이 근방 초등학교 중 유일하게 자리가 남아있다고 통보받은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렵게 배정을 받아 학교를 보내고 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벌써 두꺼운 책을 줄줄 읽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졸지에 학습부진아가 되어버린 우리 아이. 그러나 감사하게도 학교에서는 선율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매주 목, 금 오전 3시간씩 한국인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오셔서 그 주에 배운 내용을 우리말로 설명해주시고, 집에서 복습할 수 있도록 챙겨주셨다. 세심한 도움의 손길 덕에 아이도 조금씩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영국 학교라고 이런 배려가 제도화되어 있거나 당연하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움은커녕 인종차별이 의심되는 상황, 학교 폭력이 발생해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는 학교도 있단다. 처음부터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꼭 맞는 곳으로 오게 되었구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영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잊지 못할 순간들이 있었다. 선율이가 학교에 다닌 지 5개월쯤 지났을 때. 웬 시험을 친다고 공문이 왔다. 이름은 SAT(Standard Attainment Test). 영국 학제에서 병설 유치원에 해당하는 리셉션, Year 1, Year 2까지를 Key Stage 1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마친 후 해당 과정을 잘 이수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다. 과목은 읽기, 문법, 스펠링과 문장부호를 바르게 썼는지를 평가하는 국어(지만 우리에겐 영어)와 수학 두 가지. 평소 일주일에 한 번 스펠링 테스트 말고는 별다른 평가가 없다가 한 주 동안 대대적인 시험을 본다니 K-학부모로서 적잖이 긴장된 게 사실. 뭔가 시험 대비로 추가적인 공부를 해야 하나 싶어서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럴 필요는 없단다. 이 시험은 학생을 평가하기보다 선생님이 잘 가르쳤는지를 확인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했다. 놀랍게도 학급마다 인원의 절반을 나누어 반은 시험을 보고, 나머지는 강당에서 만들기를 하며 놀 수 있도록 준비한단다. 그다음은 바꿔서 진행한다고. 덧붙이는 말씀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이 한 주를 재미있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비교와 경쟁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심지어 시험 점수가 떨어지면 어김없이 손바닥을 맞아야 했던 학창 시절을 보낸 내게는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은 말씀이었다. 시험은 뭘 배웠는지를 평가하는 것이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되는 것이지, 불안과 염려가 필수적으로 따라올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아이는 집에 오는 길에 무엇을 만들고 놀았는지 얘기하기에 바빴다. 생애 첫 시험을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했다.



영국 초등학교 과정을 경험하면서 과도한 개인 경쟁을 지양하는 대신 학생들의 참여도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주말에 과제를 해가면 선생님이 확인 후 2tp, 3tp라고 작게 써두신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선율이에게 물어보니 팀 포인트(Team Point)의 약어란다. 해리포터를 보면 그리핀도르, 허플퍼프, 레이븐클로, 슬리더린 네 개의 기숙사로 나뉘고, 기숙사마다 점수를 매겨 우승컵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각 학교마다 하우스 포인트, 팀 포인트라고 다르게 부르기도 하는데 기본 개념은 같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태양계 이름을 따서 수성(Mercury), 목성(Jupiter), 토성(Saturn), 해왕성(Neptune) 네 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떤 팀이냐에 따라 체육복 상의 색깔도 달랐다. 옆에서 지켜보니 영국 학교의 이 팀/하우스 포인트 전통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개인 경쟁이 당연시되고 장려되었는데 여기서는 내가 잘하면 우리 팀에 점수가 쌓이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신선했다. 살다 보면 개인의 탁월한 역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게 협력과 팀워크다. 수업 시간이건 운동회건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팀을 자랑스러워했고, 목청껏 응원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걸 보니 이 자체가 중요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아이들의 성취를 독려하는 방법은 다양한 상을 빈번하게 주는 것이었다. 매일 간단한 스티커부터 이번 주에 담임선생님이 1명의 학생을 뽑는 ‘Star of the Week’, 학년 조회 시간에 파란 종이로 된 상장을 받는 ‘Blue Certificate’, 교장 선생님이 교복 상의에 붙여주시는 'Headteacher's Award'라고 적힌 스티커 그리고 한 학기에 1번 뽑는 Governor's Award까지 다양한 종류의 상이 있었다. 수상 문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한 학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어떤 상이라도 받게 되고 이런 경험은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내가 눈여겨봤던 건 학업적 성취도가 뛰어난 아이들만 상을 받는 게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노력해서 어떤 부분이 향상되면 그 부분을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점이었다. 선율이의 경우 2학년 마지막 학기에 처음으로 Governor's Award라는 큰 상을 받았다. 특별히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서투른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려고 한 노력을 성과로 인정하고 격려해 준 의미였다고 본다. 선생님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주셨다. 이 상을 받으면 특별히 부모를 학교로 초대해서 시상식을 지켜볼 수 있는 영예를 준다. 우리 아이가 귀한 상을 받으니 물론 기뻤지만 내게는 신나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발을 구르며 힘껏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질투와 시기심보다는 축제의 현장처럼 보였다. 상을 받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고,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으니 아이들도 질투보다는 마음껏 축하해주나보다 싶어 흐뭇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학습공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행사가 치러지는 놀이의 장이기도 했다. 1년에 한 번씩 근사하게 차려입고 팝콘과 음료수를 사 먹을 수 있는 디스코 파티가 열렸고, 여름이면 여름 축제가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축제가 있었다. 가을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대규모 불꽃놀이를 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잠을 자는 sleepover 행사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주로 중앙정부의 지원 예산 부족으로 학부모회서 여러 행사를 기획해 부족분을 채우는 모금이 목적이었지만 친구들과의 추억이 쌓이고, 우정도 깊어져 가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매일 같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면서, 운동장에서 하교를 기다리면서,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다른 엄마·아빠들과 사귈 기회가 생겼다. 그러면서 아이 친구뿐 아니라 내 친구도 여럿 생겼다. 아이들이 있어서, 학교가 있어서 영국 사회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학교는 이방인인 우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공동체이자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비행기를 타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긴 척 등교를 시켰다. 약속한 시각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피스로 들어갔다. 오후 수업이 한창 진행될 시간이니 오피스엔 당연히 우리 아이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율이 뒤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선율이 반 선생님이 반 아이들 전부를 데리고 나와서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시는 것이었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친구, 포옹하는 친구, 손을 흔드는 선율이.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눈물은 헤어짐의 슬픔보다는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었다. 아마 너는 잊더라도 나는 이 장면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품겠지. 처음 학교 간 날 쭈뼛거리던 8살 아이는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의젓하게 걸어 나오는 11살 아이로 자랐다. 그 모든 성장의 중심에 학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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