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고를 아껴줄 출판사는 어디에
11월 첫 주부터 매일 출판사 이메일을 찾고 투고 메일을 쓴다. 대부분 답이 없다(기존에 계약된 원고만으로도 얼마나 바쁘실지 이해합니다만). 하루에 한 두통 꾸준히 거절 메일이 온다. 편집자가 투고 메일에 첨부파일을 열어보는 확률이 5%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그냥 지나치실 수도 있는 초보 작가 지망생의 원고를 읽고 답장을 보내 주신다는 게 감사하다. 그렇지만 연이은 거절 메일에 솔직히 마음 한 귀퉁이가 조금씩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네.
원고 반려의 사유는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부터 '저희 출판사의 역량이 부족하여 귀한 원고를 출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흑흑 부족한 건 저라는 건 내남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렇게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출판일을 잠시 접고 있습니다'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아팠던 메일은 "아무래도 예상 독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미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나에게 이 메일은 일종의 '선고'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작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땅땅땅….
독자가 없는 작가가 어떤 존재 의미가 있을까.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었다. 그때 그때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주제로 한 편씩 썼다. 한 편, 두 편 글이 쌓이다 보니 이제 서른 편이 되었다. 글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투고 권유를 받고 용기를 내어 투고(말 그대로 원고를 투척;;)했지만 역시나 거절, 거절, 거절.... 그래, 이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글들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아닐 수 있어. 단 한 명의 편집자도 설득해내지 못하는 원고라면 냉정하게 책으로 나올 의미는 없겠지. 문제는 내 마음속 깊은 어떤 것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그것 봐, 너는 안 돼. 너는 결국 안 돼. 앞으로도 안 될 거야….
쓰는 사람으로 살아도 된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나 보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매진한 지난 시간들, 결국 또 나만 진심이었지, 너무도 투박한 진심. 쓰는 시간도 쉽지 않았지만 투고는 마음이 너무 괴롭다. 매일 낡고 초라한 메시지 하나 빈 병에 넣어 바다로 띄우는 마음. 누구에게 발견될지 모르지만. 결국 바다에 쓰레기만 남기는 건 아닌지. 남은 11월 동안 후회 없이 매진해보고 안 되면 깨끗하게 포기해야지.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 세상에 좋은 책은 넘치니 하던 대로 조용히 숨어서 읽는 사람으로 살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서울에 나갔다. 모처럼만의 약속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고 싶던 최우람, 임옥상, 이중섭 전시를 보았다. 조용히 작품들을 보면서 그간 메말랐던 어떤 감정들이 천천히 고양되는 걸 느꼈다. 최우람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는 연신 감탄을 했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건 절대로 한 사람이 구현해낼 수 없는, 많은 이들의 협업으로 가능한 스케일의 작품이구나. 현대자동차의 후원에 감사하는 마음마저 생겼다. 기업이 돈을 이런데 써야지, 멋있다, 엄지 척! 한국 현대미술 관련 지식이 일천하여 임옥상 작가님 이름은 처음 들었지만 이 땅의 민중들을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는 마음이 들어 마음이 뻐근해졌다. 헌법 전문을 새긴 철 병풍과 한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흙벽은 탄성을 자아냈다.
원래 이중섭 전시는 사전 예약 마감이라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우리가 간 시간에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고 안내를 받았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100편의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지만 끝내 함께 살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 그는 사후 2년 뒤에 훈장을 받게 될 줄 알았을까? 지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될 줄 상상도 못 했겠지. 생활고로 담배를 싸는 작은 은박지에 그린 그림이 은지화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을 거라는 것도.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작가 이중섭의 삶과 유작들을 보면서 뭐든 안 될 것 같으면 쉽게 포기하려고 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글쓰기가 막힐 때마다 들여다보는 책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정여울 작가님이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는데 쓰기보다는,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림 세 점, 음악 세 곡을 감상하는 편이 낫다.” 고 조언하신 구절이 떠올랐다. 오늘 전시를 보며 그 말을 가슴 깊이 이해했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서 햇볕도 못 쬐고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언어가 차오를 일이 있나. 가끔은 나에게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고 다짐했다.
아끼는 동생과 함께 전시를 보고 찻집에 마주 앉아 밀린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누었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근황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며 에너지를 충전받았다. 매번 느끼지만 멋진 여성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여성학을 배우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는 개념, 임파워먼트(empowerment), 서로 힘을 주고받고 성장하도록 돕는 이 관계들을 사랑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번 그냥 지나치던 지하철 역 꽃집에 들어갔다. 영국에선 장 볼 때마다 한 다발씩 담던 꽃이었는데 한국에 오니 선뜻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렇지만 오늘은 꽃에 마음을 좀 기대고 싶었다. 유심히 살펴보다 노란색 소국 화분 하나와 계란 모양을 한 귀여운 마트리카리아 미니 한 다발을 샀다. 두 가지 꽃을 건네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마트리카리아의 꽃말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 소국의 꽃말은 밝은 마음이에요."
"아아,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예요."
사장님은 아실까. 내가 그 꽃말들에, 아니 꽃말을 외워 건넨 친절한 마음에 깊이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 먼지가 보얗게 앉아있던 화병을 깨끗이 씻어 물을 담았다. 하얗고 노란 꽃을 꽂고 화분에 물을 주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과 밝은 마음이 다시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