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몇 주 전 토요일 첫째 선율이 친구네 가족을 집에 초대했다. 영국에서 짐이 온 후 그러니까 세간살이가 갖춰진 이후 첫 번째 손님 초대다. 아끼는 그릇도 왔겠다 식탁보도 깔고 냅킨도 접어 나름 근사하게 테이블 세팅을 했다. 어른 넷, 어린이 셋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기가 비좁을 것 같아 베란다에 캠핑 테이블을 펴고 어린이 식탁을 따로 마련했다. 문제는 의자. 캠핑 의자 두 개, 휴대용 접이식 의자가 하나인데 우리 집 어린이들이 서로 캠핑 의자에 앉고 싶어 했다. 하나는 손님인 친구에게 주기로 쉽게 합의가 되었는데, 나머지 하나 남는 의자로 실랑이를 벌이는 거였다.
“선율아, 네 손님이 오는 거니까 네가 동생에게 양보하는 게 어때?”
“싫어. 그건 불공평해.”
삐- 1차 시도 실패.
“선우야, 테이블은 높고 캠핑 의자는 너무 낮으니까 형들 주고, 너는 이 의자에 앉으면 어때? 이게 좀 더 높아서 먹기 편할 것 같은데. 그러게, 평소에 좀 많이 먹고 크라니까.”
“아니요, 안 돼요. 안 할 거예요.” (선우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한국어 3종 세트)
삐- 2차 시도도 실패다.
둘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감정이 격화되자 보다 못한 엄마 아빠는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안 내면 진다! 가위 바위 보! 치열한 접전 끝에 선율이의 승.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했으나 속이 상해버린 선우는 방에 혼자 들어가 버리더니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지 남편이 따라 들어갔다. 둘이 한참 이야기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나오는 남편.
“글쎄, 선우가 뭐라는지 알아?”
“뭐라는데?”
“내가 들어가서 자기랑 같은 얘기를 했거든. 네가 키가 작으니까 높은 의자에 앉고 낮은 캠핑 의자는 형들에게 양보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허허허. ‘엄마 아빠라면 내 키보다 내 행복을 더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더라고. 순간 할 말이 없더라.”
듣는 순간 머리에 띵- 하고 종이 울렸다. 처음 드는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둘째라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아직 한국말이 서투른 선우는 ‘height 보다 happiness’라고 했다는데 H로 시작하는 두 단어의 대비가 영어로 표현하니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의 말이 맞았다. 나는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리다는 이유로 키가 작다는 이유로 다른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게 정당한가? 높낮이가 좀 안 맞더라도 거기에 앉고 싶다는 마음을 헤아렸으면 좋았을 걸. ‘그러게, 억울하면 좀 잘 먹고 크지 그랬니.’ 잔소리까지 덧붙인 나, 생각할수록 점점 얼굴이 붉어진다.
아이의 이유 있는 항변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선우에게 가서 사과하고 안아주면서 어쩜 그렇게 멋진 생각을 했느냐고 감탄해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선율이가 자기가 다른 의자에 앉겠다고 양보를 해주었다. ‘인제 와서... 진작 양보하면 좀 좋아?’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일단 꿀꺽 삼킨 뒤 선율이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캠핑의자를 둘러싼 형제의 난은 사과와 양보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친구네 가족이 도착하고 우리 집 공식 셰프 남편 덕분에 맛난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오늘의 메뉴는 비프스테이크와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 어린잎 샐러드. 살짝 높이가 있는 유리잔에 주스를 따라주니 제법 짠! 하고 잔도 부딪히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정성을 담아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좋았다. 아이들도 근사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귀한 대접을 받아보아야 다른 사람들을 귀하게 대접할 줄 아는 어른으로 클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2022년 올해는 어린이날이 선포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다. 어린이들의 가슴에 일으킨 잔물결이 뒷날 큰 물결, 대파(大波)가 되어 출렁일 거라고 소망했던 소파(小破) 방정환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본다. 오늘 아이가 준 교훈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마음에 늘 품고 살아가야지. 너의 키가 아니라 너의 행복을 먼저 고려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외적 조건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고 내면을 살피는 어른이 되겠다고.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역시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