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절산문

아름다움으로 초대하는 영화 ‘수라’

황윤 감독, 수라 (2023) Sura: A Love Song

by 시에나

영화 취향이 좁은 편이다. 극장을 자주 찾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한번 볼 때 신중하게 영화를 고른다. 관심 있는 주제인가, 영화의 만듦새는 어떤가, 믿을만한 세간의 평까지 꼼꼼하게 체크한 뒤 예매 버튼을 누른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다룬 독립영화 ‘수라’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좋다고, 꼭 보라는 몇몇 지인들의 추천이 있었지만 딱히 극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라니 낯설기도 하고, 좋은 취지로 만든 영화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아쉽던 경우도 왕왕 있었기에 여전히 망설였다. 여름글방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가 있기 전까지는.


그런 내가 ‘수라’를 연달아 두 번 보았다. 글방 친구와 함께 보고, 며칠 뒤 주말에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다시 봤다. “세상에 얼마나 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한번 본 영화를 또 봐?”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하는 남편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었는데 이번엔 내가 주도해서 N차 관람을 했다. 그만큼 마음을 두드렸고 한 명이라도 더 같이 보자고 권하고픈 영화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마음의 수면 위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라’는 내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영화였다.


쇠검은머리쑥새 노래소리를 채집하는 승준과 윤, 영화 스틸컷. 영화사 제공

‘수라’는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을 가진 군산의 한 마을에서 따온 제목이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수라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지금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마을 주민들이 종사하던 어업이 붕괴되었고, 미군기지 전투기 소음으로 고통을 겪는 땅이 되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노태우 대통령 때 시작되었으니 이미 끝난 것 아닌가 싶지만, 놀랍게도 매립은 30년째 진행 중이고 유일하게 남은 곳이 수라 갯벌이란다. 그마저도 새만금 신공항으로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연출이자 주연인 황윤 감독은 무려 7년에 걸쳐 수라 갯벌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을 따라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2003년 자발적으로 결성된 조사단은 매월 꾸준히 모여 갯벌 생태 조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활동을 해왔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사라져 가는 새 개체수를 세고, 멸종위기종의 새소리를 찾아 녹음하고, 새만금을 지켜달라는 염원을 담아 장승을 세웠다. 장승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마는, 무서워지라고 장승 눈을 빨갛게 칠한다고 누가 눈이나 깜짝하겠느냐마는 그래도 뭐라도 하는 마음, 함께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모습에 왈칵 눈물이 터졌다. 아아, 이 사람들 대체 뭐지.


65일간 350km를 걸어 부안에서부터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한 4대 종단 성직자들과 그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또 어떤가. “갯벌이 사랑이고 삶”이었던 고 류기화 어민, “카메라가 있어야 할 곳을 알려준” 고 이강길 감독도 다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득과 실을 악착같이 따지는 세상에서 묵묵히 자기가 믿는 바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아름답다. 독립예술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전국 159개 상영관에서 개봉하고, 개봉 5주 차 3만 명 관객을 돌파한 것도 이들에게 감응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좌) 연출 황 윤 감독, (우)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 영화사 제공


영화는 내내 수라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클로즈업해서 비춘다. 도요새, 쇠검은머리쑥새,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흰발농게, 생합, 서해비단고둥... 이름도 낯선 멸종위기종, 법정보호종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갯벌에 잇대어 살아간다. 그중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던 장면은 역시 도요새의 군무.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은 예전 옥구염전이 ‘새의 박물관’이라고 부를 정도로 새를 많이 볼 수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특히 도요새가 10만 마리 이상 관찰할 수 있었단다. 도요새 무리가 한꺼번에 지나가면 쉭- 쉭- 바람 소리가 날 정도라고. 기록된 영상에만 의존해 그 장면을 그려보던 황 감독이 훗날 유부도에서 도요새 군무를 만나는 장면이 눈물겹다. 화면 가득 점을 찍듯 가득 메운 도요새를 보며 관객들의 감탄사도 한꺼번에 터졌다. 마침내 바라던 장면을 실견한 황 감독의 황홀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은 인터뷰에서 오동필 단장은 말했다. 자신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아마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이런 걸 목격한 사람은 그 전율을 잊을 수 없다고.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죄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쓸쓸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비록 화면 너머지만 나도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본 죗값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너무 늦기 전에 수라에 가보고 싶다고.

수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 영화사 제공


갯벌을 지키는 사람들과 갯벌에 사는 뭇 생명들도 아름답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서 나는 갯벌 자체의 아름다움에도 주목하게 되었다. 황 감독은 씨네 21 인터뷰에서 “갯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목표였다. 사실 갯벌 자체가 달과 지구의 만유인력으로 생성된 하나의 작품 아닌가. 그런 갯벌을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언급했다.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 영화 엔딩장면에서 어떠한 음향도 없이 햇빛에 반짝이는 갯벌만 공중에서 천천히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추상화 같기도 하고 수묵화 같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수라 갯벌을 되살리지는 못할망정 새로 공항을 짓겠단다. 이미 군산공항이 존재하는데 굳이 하나를 더 만드는 건 국제공항의 역할보다는 중국을 염두에 둔 미군기지 확장이 목적일 것이다. 안 그래도 미세먼지,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갯벌을 매립하고 멸종 위기 생명들을 없앤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생태파괴 행위이며 한반도 평화와도 결부된 문제다. 어떻게든 추가매립을 막고 갯벌과 거기에 깃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영화 전체를 통해 아프게 전해져 왔다. “수라는 미군의 땅이 아니라 고라니의 영토, 칠면초의 영토, 개개비의 영토, 잿빛개구리매, 쇠제비갈매기의 영토, 가마우지의 영토.”라는 황 감독의 내레이션이 내내 마음을 울린다.

어떻게 하면 이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온 다음부터 한숨이 깊다. 존재했으나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알게 된 사람의 책임이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무려 540일째 폭염이나 혹한에도 한결같이 세종시 국토부 앞에서 새만금 신공항 반대 천막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넣었다. 드디어 언니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그동안 무관심해서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언니가 바라는 건 입소문이 많이 나서 나처럼 관심 없던 사람들이 더 많이 영화를 보는 것.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언니의 간절한 바람에 부족하나마 글로 마음을 보탠다. 아직 전국에 상영관이 있으니 더 많은 이들이 ‘수라’를 보러 극장을 찾았으면 좋겠다. 갯벌에 아름다움을 느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수라 갯벌의 친구들’이 되어주기를. 그리하여 신공항 설립이 무산되고 수라를 살아나는 기적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본 글은 ‘여름글방: 여름의 이면’ 과제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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