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김유담 외, <돌봄과 작업 2>, 돌고래출판사
방학이다. 덥다. 이번 주 써야 할 글이 3편이었는데 하나는 마감 시간을 훌쩍 넘겨서 겨우 마침표를 찍었고, 나머지 두 편은 작업 중이다. 아이들 방학이 되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반토막, 아니 반의 반토막이 난다. 엄마경력이 어언 10년이 넘었는데 삼시 세 끼는 여전히 너무 힘들고(학교 급식은 사랑입니다), 아이들 학원 간 한두 시간 짬을 활용하거나 통으로 새벽시간을 사용해야지 겨우 뭔가를 끼적거릴 수 있다. 두 아이 엄마로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돌봄과 작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돌고래 출판사의 <돌봄과 작업> 책이 참 좋아서 주변에 많이 권했더랬다. 비슷한 콘셉트로 책을 기획하시는 출판사 대표님께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을 드리기도 했다. 얼마 전 출간된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를 읽고, 번역자와 함께하는 두 번의 줌미팅에도 참여했다. 어느새 돌고래 출판사의 팬이 된 나는 <돌봄과 작업 2>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손을 번쩍 들었다.
<돌봄과 작업 1, 2>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돌고래 출판사의 김희진 대표의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가히 기획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책. 워킹맘의 고충 정도로 축소되었던 일과 양육의 의미를 ‘돌봄과 작업’으로 명명해 내고 선점하고 이슈화시킨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어디서 어떻게 이런 필자들을 다 한 자리에 모았는지도 놀랍다. 알고 보니 민음사와 반비를 거친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 편집자더라. 역시 싶었다. 편집자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는지, 그리고 각 필자들의 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 양육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언어는 지나치게 명료하고 단호하고 해맑고 건전하고 평가적이다. 이런 언어를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관찰과 숙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김희진, 돌봄과 작업 2, 17-18쪽)
김희진 대표가 <돌봄과 작업 1> 소개 자료에 쓴 문장이다. ‘엄마’라는 존재를 집단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한계와 욕망을 가진 개인으로 분투하며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조명하겠다는 포부가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일하는 엄마로서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고민과 성찰 끝에 나온 것일 테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전부가 아닌, 사랑하나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함께이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공간을 만들려는 엄마들의 분열성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끌리는 주제다. 이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매일 겪는 일이므로.
<돌봄과 작업 1>처럼 2도 다양한 직군에서 돌봄과 작업을 감당하는 필자들이 모였다. 김유담 정아은 소설가, 장수연 라디오 PD, 이수현 교사이자 발달장애아 부모, 황다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김다은 문화예술 기획자, 김연화 과학기술학 연구자, 김은화 편집자이자 구술생애사 작가, 김잔디 키보디스트 이자 정신건강간호사, 소복이 만화가, 임효영 일러스트레이터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11명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느 글 하나 내 맘 같지 않은 글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이수현, 장수연, 김유담의 글은 꼭 언급하고 싶다.
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희망 없는 미래를 향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따스한 학생들의 모습은 나를 다독여주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나는 아이들을 버리고 일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을 위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 중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었다. (이수현, 돌봄과 작업 2, 101쪽)
먼저 장애가 있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교사로 복직하기를 선택한 이수현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역시 유려한 문장보다 힘이 있는 건 자기 삶을 통과한 이야기다.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좌절과 고뇌의 시간을 겪고도 두 발로 서서 일어나 “내 작업은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세상을 위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일이다. 내게 온 두 아이는 내 삶에 절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빛이요 희망이다.(101-102쪽)”라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그녀의 단단함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15년 차 라디오 PD이자 학원 라이딩을 직접 하는 아이 셋 엄마이자 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인 장수연의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 모든 일을 다 하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본인은 직장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작가로서도 0.5인분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내겐 범접할 수 없는 슈퍼우먼처럼 보였다. 해서 옆에 조그맣게 적어놓았다. 합치면 1.5인분이잖아요. 이미 넘치게 하고 계시잖아요... 매일 전력질주 하면서 사는 그가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부분은 정말... 글을 쓰는 동안 흐릿해진 나의 존재감을 찾는다니. 역시 글을 쓰셔야 하는 분이다.
글쓰기를 내 인생의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직업인도, 엄마도 아닌 나로 존재하는 이 행위 덕분에 직업인으로도, 엄마로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아이들과 함께하며 행복감을 느끼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나의 ‘존재감’을 느낀다. 일과 육아는 과하면 나를 흐릿하게 하는데, 글쓰기는 나를 진해지게 한다. (장수연, 돌봄과 작업 2, 81-82쪽)
<돌봄과 작업 2>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세계를 단단하게 지켜온 여성들을 보며 순간 자괴감도 들었음을 고백한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출발선에 선 나에게는 필자들이 이루어놓은 성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대단해 보였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 책을 써야지. 나 따위가 뭐라고.’ 또 슬며시 올라오는 열등감이 나를 닥칠 때 김유담의 문장은 그 자체로 위로였다. 당신의 작업과 희귀한 종족의 기질을 포기하지 말라는 간곡한 조언, 그렇다고 자신을 자책하거나 미워하지 말라는 당부로 구겨졌던 마음이 펴졌다.
당신의 손길 없이는 당장 생존을 영위할 수 없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종사하면서 무언가를 쓰고 싶은 여성들에게, 당신의 작업과 희귀한 종족의 기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꼭 전하고 싶다. 동시에 작업을 이어갈 수 없는 당신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그것을 어렵사리 헤쳐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자책하거나 주변환경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도 덧붙이고 싶다. (김유담, 돌봄과 작업 2, 50쪽)
미소와 울컥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었던 책 <돌봄과 작업 2>. 이 시리즈는 계속되어야 한다. 언젠가 나올 <돌봄과 작업 3>를, 그리고 희귀한 동족들의 이야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 이 글은 돌고래출판사에서 펴낸 <돌봄과 작업 2>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고 애정을 담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