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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ul 20. 2023

함께 지어 더 즐거운 '놀이밥'

북리뷰: 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소나무


비 오는 어린이날의 긴급대책, 실내체육관 대관


지난 5월 어린이날, 올해는 대학 친구들 3 가정이 모여 1박 2일을 보내기로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났으니 이제 20년이 넘는 찐친들이다. 저출생 시대가 무색하게 다들 아이들을 많이 낳았다. 기본 아들 둘로 시작해 아이가 셋, 무려 넷인 집도 있다. 이번엔 중학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 9명 어른 6명 도합 15명이 모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함께 농구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녀석들은 이번에도 실컷 농구를 하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래, 밖에서 에너지를 좀 빼고, 바비큐를 하고, 영화를 틀어주면 되겠다. 그런데 두둥, 비가 온단다. 그것도 호우주의보! ‘그럼 이 에너지 덩어리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뭘 하나...’ 어른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다.


“실내 체육관을 대여할 수 있는지 알아보면 어때?”

“와, 그거 좋은 생각인데?!”


가평군 내 가능한 체육관에 일일이 연락을 돌려 마침내 대여할 수 있는 곳을 찾았을 때,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대망의 어린이날, 아침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점심이 되니 더 거세졌다. 주위에선 캠핑을 취소했다, 이번엔 집콕이다, 애들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씨를 원망했지만 우리는 보험을 들어놓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점심을 먹고 대관한 체육관에 들어갔을 때 다들 ‘우와...’ 탄성을 질렀다. 프로 경기를 뛰어도 될 정도로 제대로 된 코트와 관중석이 있는 진짜 체육관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는데 우리 수준에 비해 넘치게 훌륭한 시설을 대관하게 되다니!


아빠들 대 아들들로 나눠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뛰는 모습이 멋져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사십 대 아빠들과 십 대 자녀들이 함께 코트를 뛰어다니는 희귀한 장면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학교 다니는 내내 농구장에 살던 친구들이 전력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농구 처음 하는 아이들을 안 봐주려고 열심히 뛰는 게 웃기기도 하면서도 뭉클했다. 이번엔 5점을 주고 시작했지만, 곧 5점을 받고 시작하는 날도 올 것이다.(의연하자) 반대편 코트에선 친구 딸들이 슛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스마트폰과 게임이 유일한 놀이문화인 중등 아이들이 “그것보다 친구들이랑 함께 농구하는 게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라고 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아이들에 이어 엄마, 아빠들 달리기가 이어졌다.


농구에 이어 두 번째 메인 프로그램은 달리기!


먼저 초등부 아이들부터 시작했다. 가장자리에서 손을 치켜들고 ‘준비! 출발!’을 외치는 내가 제일 신이 났다. 구령에 맞춰서 다다다 달려 나가는 아이들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엄마들 달리기, 아빠들 달리기도 이어졌다. 몸이 무거운 나도 이를 악물고 전력 질주를 했으나 결과는 꼴찌. 1초라도 줄여보려는 진지한 표정이 그대로 비디오에 담겨 다들 돌려보며 와하하 웃었다. 내가 구겼던 우리 집 체면은 남편이 1등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세웠다. 다음에는 가족별 계주를 하자, 매년 어린이날 체육대회를 열자, 이긴 가족을 위해 트로피를 제작하자, 높아지는 웃음소리만큼 점점 일이 커졌다.


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소나무


‘놀이순수주의자’ 편해문 선생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읽으며 그날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나는 30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지독한 성취주의자였다. 늘 모자라는 시간과 돈에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도 아까워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면서 어느새 놀이에 진심이 되었다. 성격상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였기에 공동체에 많이 기댔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어 고단하고 외로운 육아기를 잘 버텼다. 여름이면 수영장, 겨울이면 스키장,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을 이끌고 간 제주 여행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추억이다. 아이들에게는 놀이는 밥이라는데 혼자서 지어 먹이려면 늘 힘이 부쳤다.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듯 함께 노는 놀이가 더 즐거운 법. 아이들의 삶이 놀이로 촘촘히 박음질되는 동안 우리 삶도 쉽게 뜯어지지 않았다(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15쪽).


꽉 찬 1박 2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언제 다시 또 만나냐고 성화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지. 7월에 물놀이, 9월에 제주행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엔 아장아장 걷는 아기까지 합세한 20명 대규모 인원이다. 북적북적 정신없겠지만 또 어떤 재미난 추억이 쌓일까. 함께 지어 더 풍성한 ‘놀이밥’, 아이들도 어른들도 실컷 먹고 배부를 날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 글. 노워리기자단 안정인


일상에서 발견한, 작지만 빛나는 순간을 붙잡고 싶어 글로 엮는 사람. 2023년 2월 <영국 탐구생활>을 출간했다. 나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고자 여성학을 공부했으며 여성정책, 보육정책 관련 프리랜서 연구자로 일했다. 이십 년 지기 친구인 남편, 우당탕탕 두 아이와 함께 지루할 틈 없는 나날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일간 노워리] 사교육걱정의 시민참여활동 ‘노워리 기자단’이 쓰는 교육과 일상, 책 이야기.

7월에는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편해문, 소나무)를 함께 읽으며 발견한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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