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대니 샤피로, 『계속쓰기』, 마티
얼마 전 SNS를 보다가 소위 ‘현타’가 왔다. 15년 전 사원이었던 녀석들은 차장급으로 승진했고, 대학원생들은 하나둘 교수임용이 되었더라. 40대에 들어서니 오래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 일가를 이룬 것을 본다. 야, 다들 열심히 살았구나. 대단하네.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쑥 해묵은 열등감이 올라왔다. 난 왜 만날 시작점일까.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도, 열정을 바쳐 일했던 기독교 NGO도, 뜨거운 포부를 안고 도전했던 여성학 공부도 결국 다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남편과 얘기를 나누다 여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내가 한심해 눈물이 났다. 만약 돌아간다면 다시 하고 싶은 게 있어? 남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었지만 결국 내 길은 아니었어. 그럼 글쓰기는?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일이지. 축 가라앉았던 목소리에 다시금 힘이 붙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오래 망설였다. 읽는 사람으로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쓰는 사람으로 한 발짝 걸음을 뗐다. 영국살이 마지막 해, 타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온기를 나눈 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로 꼭꼭 박아두지 않으면 곧 흐릿해질 것 같은 아쉬움에 용기를 냈다. 그때 나는 내가 기억하려고 쓰는 사람임을 알았다. 한국에 돌아오니 다들 이제 뭐 할 거냐고 물었다. 프리랜서 연구자로서 제법 자리 잡아갈 때쯤 영국으로 떠났던 나, 앞으로도 남편을 따라 해외로 떠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직업을 찾는 건 요원해 보인다. 그렇지만 글쓰기와 책 읽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지금 내 자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것.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올해 초 <영국 탐구생활>을 펴내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차에 윤슬 1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4개월 동안 동료들과 4권의 책을 읽고 토론한 뒤 서평을 썼다. 기억과 존재 증명, 다소 비장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윤슬 모임을 마치고 나면 자꾸 ‘이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좋은 사람들과 책을 읽고 삶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라고. 언제나 성취가 중요했던 내가 글쓰기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도, 보수도 없는 일에 뛰어들다니 신기하다. 여전히 백지 앞에서 두렵지만, 그래도 쓰는 과정 자체를 좀 더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쓰고 나서의 후련함이나 성취감, 쓴 글을 나눌 때의 기쁨도 크다. 무엇보다 내 글을 귀하게 여겨줄 동료들이 있기에!
근사한 글보다 나를 흥분하게 하는 건 없다.
좋은 글은 나를 고양시키고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커다란 작가 공동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260쪽
이 부분을 읽고 나의 윤슬이 생각났다. 읽고 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반짝이는 윤슬의 멤버가 되어 기쁘고, ‘우정과 호의의 순간(<등대로>)’이 윤슬 덕분에 더 자주 찾아왔음을 고백한다. 함께 읽은 네 번째 책 <계속 쓰기>는 쓰는 삶으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오라고 초대하는 책이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을 살짝 비틀어 본다면 ‘작가로 가는 길은 없다. 쓰는 자체가 길이다.’ 그렇다면 계속 쓰기는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한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션. 숨참고 Love Dive. 어느새 글쓰기의 세계로, 쓰는 삶으로 풍덩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