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이재포 외, <Z 세대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민들레
핸드폰은 없어도 게임은 못 참지
“엄마, 우리 반에서 핸드폰 없는 사람 나밖에 없대!”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이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외쳤다. 반에서 스마트폰 관련 실태조사를 했는데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우리 아이 하나고, 폴더폰을 쓰는 아이가 한 명 더 있고, 나머지는 전부 스마트폰이라고 한다. ‘이제 때가 된 건가…?’ 싶어 너도 갖고 싶냐 물어보니 지금은 필요가 없단다. 오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저도 갖고 싶을 텐데 특별히 조르지 않는 아이가 신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부모님이 큰 결심 하셨구나.” 칭찬해 주셨단다. 친구들 앞에서 남몰래 어깨가 으쓱했나 보다.
선생님 말씀대로 뭔가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작년 초까지 3년간 살았던 영국에서는 중학교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고가의 핸드폰을 사주는 일은 드물었다.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 일이 없기에 굳이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나는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에는 최대한 집에 있으려고 하고, 부득이하게 나갈 때는 식탁 위에 쪽지를 써놓고 간다. (물론 이건 내가 직장에 매여있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학교와 학원 모두 아이가 도착하면 문자로 알려주는 ‘아이 알리미 서비스’가 있어서 심신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핸드폰이 있으면 더 편리하겠지만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요금도 아깝고, 핸드폰으로 시작되는 사춘기 전쟁도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도 아이가 원한다면 완강하게 반대할 생각은 없다. 아니, 할 수가 없겠지.
큰아이가 영국에서 초 3이었을 때 어느 날 마인크라프트(Minecraft)라는 게임 얘기를 했다. 친구들이 하는 게임인데 본인도 해보고 싶단다. 남편과 나 둘 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기에 아들의 요구가 낯설었다. 그날부터 치열한 고민과 가족회의가 시작되었다. 찾아보니 게임 자체가 크게 유해하지 않고 기본적인 코딩개념도 익힐 수 있을 것 같아 허락했다. 그 뒤 로블록스, 닌텐도 스위치, 엄마 아빠 스마트폰을 이용한 폰게임으로 진화되는 중이지만.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정착한 우리 집 게임 원칙이 있다. 첫째, 일단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게임을 하든 TV를 보든 자유시간을 갖는 것. 본인이 해야 할 일에는 학교 숙제와 개인 공부, 방 정리, 샤워, 간단한 집안일, 운동, 책 읽기 등이 있다.
둘째, 게임과 TV 시간을 합치면 하루 1시간 정도, 그중 게임 시간은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기. 대신 주말엔 조금 더 넉넉히 시간을 준다.
평일엔 안 하고 주말에 몰아하는 방법도 제안해 봤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마음 편히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루 끝 보상이 얼마나 달콤할지 어른으로서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아직은 우선순위와 시간을 잘 지켜주기에 큰 갈등 없이 지낸다(고 쓰고 다가올 사춘기가 두렵다고 읽는다.)
Z세대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란
민들레 출판사에서 펴낸 민들레 선집을 애정한다. 이 시리즈의 장점으로 먼저 ‘작고 가볍다’를 꼽고 싶다. 읽을 때도 가방에 가지고 다닐 때도 부담이 없다. 책값 또한 저렴하다. 두 번째는 쉬운 언어로 쓰였다는 점이다. 중요한 주제일수록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민들레의 접근이 고맙다. 세 번째 장점은 깊이다. 가볍고 저렴하고 쉽기만 했다면 애정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안교육, 젠더 감수성, 기후 위기, 아동학대 등 우리 교육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를 꼼꼼히 다룬다. 해당 주제에 관한 민들레 선집 한 권만 읽어도 대략적인 논점을 파악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당사자성이다. 소위 전문가만 지면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학생, 부모, 교사, 활동가, 전문가 등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가 지면을 고루 채운다.
이전에 읽은 민들레 선집에 대한 신뢰로 이번에도 한껏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역시는 역시다. 장희숙 민들레 편집장의 ‘엮은이의 말’부터 벌써 좋다. 디지털(digital)은 본래 사람의 손가락이나 동물의 발가락을 뜻하는 digit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손가락을 접듯 0과 1 딱 떨어진 숫자로 빚어진 문명과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도입부가 흥미롭다.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며 다급하게 쫓아가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무지의 세계를 지나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나보자(7쪽)”는 제안에 이 책의 핵심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자, 미지의 세계로 탐험 출발!
훌륭한 통찰을 주는 글이 많았지만 박세연의 “Z세대는 어떻게 소통할까” 글을 첫 손에 꼽고 싶다. (앞서 민들레 선집의 장점으로 당사자성을 꼽았던 것을 기억해 주시길.) SNS에서 시작해서 SNS로 끝나는 10대 여성의 하루. 아침 6시에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반기는 불빛 수십 개를 보며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이 하이파이브(혹은 바통터치)하는 시간(14쪽)”이라고 표현하는 게 신선했다. 앱으로 원하는 얼굴로 보정한 사진을 사기라고 비아냥거리는 애들에게 셀카로 얼굴을 재창조해낸 아이들이 이렇게 말한단다.
“오렌지가 3퍼센트만 들어가도 오렌지 주스야!”
이토록 재치 있으면서도 적확한 표현이라니! 박세연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미디어 교육은 대부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Z세대에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더 이상 서로 구분된 세계가 아님을 강조한다. 교육의 초점이 무조건적인 통제에서 “어떻게 해야 옳은 방식으로 온라인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외에도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우산 아래 다양한 필자들이 논지를 전개해 나가지만 공통으로 견지하고 있는 전제가 있었다.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미 디지털 시민이자 환경 그 자체라는 사실(박유신, 162쪽)”을 받아들이고, “무조건 금지할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목적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도록(정현선, 79쪽)” 도와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어른들의 역할이란 고루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그 도전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보여주는 일(하현기, 31쪽)”이라는 것. 스마트폰이든 게임이든 무조건 늦게, 최대한 통제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틀을 깨는 말씀이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삐삐가 생겼고, 대학 가서 핸드폰과 인터넷을 접했던 디지털 이주민인 나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공기처럼 감싸고 있는 디지털 원주민 아이들의 삶은 같을 수가 없다. 이때까지 디지털 세상의 폐해와 위험성에만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점점 거세져 오는 파도를 즐겁고 안전하게 타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야겠다. 아니 배워야겠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고민하는 이들, 특히 자녀와 소통을 고민하는 부모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사춘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요즘,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만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