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 지금은 없는 시민, 한겨레출판
“우리 코스트코 갈래?”
정신없는 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이면 남편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묻곤 했다. 장보기가 첫 번째 목적이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집에서 차로 십여 분 걸리는 거리라 아이들은 영화에 맡겨놓고 둘이 살짝 바람 쐬고 오기 안성맞춤이었다. 장보기를 빙자한 부부 데이트 장소였던 셈이다. 밥 하기 싫은 주말 저녁이면 아예 가족 모두가 출동해 푸드코트 피자나 핫도그 등으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비싼 외식 물가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았다. 한 달에 두세 번 꼬박꼬박 드나들게 되자 남편 주거래 카드도 코스트코 현대카드로 바꿨다. 그것도 추가금을 내고 결제 시마다 포인트가 더 많이 적립된다는 이그제큐티브로. 코스트코는 우리 부부에게 단순한 슈퍼마켓이 아니었다. 우리는 코스트코를 사랑했다.
2023년 6월 19일,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29세 청년 김동호 씨가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탈수였다. 이틀째 폭염주의보가 이어진 날,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33도의 날씨에 그는 옥외주차장에서 쇼핑카트 정리업무를 했다. 그는 하루 10시간, 평균 4만 보(26km)에 이르는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가다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냉방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제대로 공급되었다면, 휴게실이 가까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아까운 목숨이었다. 7월 중순 뉴스를 접한 날부터 코스트코 방문을 중단했다. 비록 내가 다니는 지점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욱신거려 갈 수가 없었다. 코스트코 코리아의 사과와 후속 조치를 기다렸다.
그 후 틈만 나면 초록색 검색창에 ‘코스트코 사과’를 쳐보았다. 껍질째 먹는 사과, 엔비 사과 등 먹는 사과(apple)만 주르륵 검색되고 내가 바라는 진정성 있는 사과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회원으로서 나는 코스트코가 이번 사망 사고에 성심성의껏 대처하길 바랐다. 이미 일어난 일은 가슴 아프지만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앞으로 책임감 있는 행보를 보인다면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바람과는 다르게 코스트코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8월 초, 빈소에서 코스트코 코리아 대표이사가 찾아와 사과는커녕 “지병이 있었는데 숨기고 입사한 것 아니냐?” 막말을 했다는 기사를 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최고인 세상이라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어쩜 그렇게 비정할 수 있단 말인가. 유족들이 미국 코스트코 본사에 진정서를 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도 실망스러웠다. 자기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한국에서는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아무런 개입도 없는 건 한국 소비자를 우습게 알기 때문이 아닐까. 만화 <송곳>의 대사처럼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말이다. 나도 그 많은 카트를 밀게 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8월 중순, 남편과 상의 끝에 이제는 정말 발길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회원 탈퇴를 위해 코스트코에 갔다. 언제나처럼 주차장은 만차고 매장은 커다란 쇼핑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실은 회원들로 붐비는 걸 보니 ‘우리 가족 하나 안 온다고 해서 어떤 타격도 없을 텐데...’ 싶어 의기소침해졌다. 그동안 모은 포인트 소진 차 즐겨 사던 품목을 골라 마지막 장을 봤다. 양이 많아서 팍팍 쓰던 올리브유도, 가격 대비 훌륭했던 와인도, 냉장고 필수 아이템이었던 닭가슴살도 이제 안녕이라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졌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이런 감상도 사치스럽다 싶어 마음을 다잡았다. 1층 고객센터로 가서 회원 탈퇴를 신청했다. 탈퇴 사유는 ‘카트 노동자 사망사고 대처 부재’라고 적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선명하게 밝혀두고 싶었다.
90년대생 논객 강남규 작가의 책 <지금은 없는 시민>의 부제는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이다. 그는 책 전반에서 ‘동료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를 향해 “정치가, 언론이, 동료 시민이자 동료 노동자가 산업재해와 노동 문제를 책임 있게 마주할 때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비로소 온다(12쪽).”라고 역설한다. 그는 ‘현명한 소비자’에 머무르려고 하는 우리를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시민’의 자리로 초대한다.
결코 소비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는 이슈들에 대해서 소비자와 시민이라는 공존하는 두 가지 태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불편하고 손해를 봐야 지속할 수 있는 노동과 문화가 존재하고, 노동과 문화가 계속되어야 그것의 편익을 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이것은 사회적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건강한 순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강남규, 지금은 없는 시민, 196쪽
코스트코를 탈퇴한 지 뒤 두 달이 지났다. 마트 하나를 끊었을 뿐인데 삶의 전반에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대용량으로 사는 게 익숙했다면 이제는 조금 비싸더라도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구입하려고 한다. 늘 냉동고가 있었으면 했는데 이젠 작은 냉장고로도 충분하게 되었다. 노동자의 과로와 사고 위험이 있는 온라인 새벽 배송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대신 이틀 전에 주문해야 하는 생협 온라인 공급이나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가까운 생협이나 도보거리 마트를 이용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편이 더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다.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실천할 수는 없겠지만 ‘소비자’로서 손톱만큼의 힘이 있다면 그 힘을 더 나은 곳에 쓰고 싶다. “사회구조의 동참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부채감을 가진”(197쪽) ‘시민’이고 싶다.
이주 전 10월 12일 조민수 코스트코 대표이사가 국정 감사에 불려 나왔다. 백일이 넘는 시간 동안 유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과를 당사자 앞이 아닌 국감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국회의원의 질의응답을 통해서 추가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 다른 대형마트들과 비해 코스트코의 산재 비율이 높으며, 매년 사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노조 단체협약이 지지부진하다는 것,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 대신 과징금을 내고 있다는 것… 부러 써둔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다. 다시 한번 굿바이 코스트코, 멀리 안 나갑니다.
삼가 고 김동호 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