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옮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묘한 책이다. 누군가 이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이다. 지하실에서 삼십오 년째 폐지압축공으로 일하는 주인공 한탸, 그를 둘러싼 주변 세계 - 쥐, 파리, 오물, 퀴퀴한 냄새 등 - 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생생한지 비위가 약한 나는 여러 번 책을 덮어야 했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 만차가 두 번이나 오물로 수치를 당할 때, 작가가 위악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러면 이 책이 싫으냐고 물으면 다시 고개를 저을 것이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뺏길만한 문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9쪽).” 얼마나 책을 많이 읽으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나와 책이 합일된 경지는 모든 애서가의 꿈이지 않을까?
한번 책에 빠지면 전혀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중략) 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 줄 책들. (16쪽)”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한탸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책 속으로 도망쳤던 날들, 책이 있어서 견딜 만했던 날들, 읽고 나면 허기졌던 마음이 고봉밥을 먹은 것처럼 든든했던 날들이 내게도 있으니까. 한탸처럼 내 가방 속에도 항상 책이 들어있고(본 투비 보부상, 미니 백 유행은 나랑은 상관없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혼자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사랑한다. 내가 아직 모르는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려줄 책들을 만나는 시간.
은퇴를 앞둔 한탸의 꿈은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평생을 함께했던 압축기를 사들여 하루 한 꾸러미씩 한 점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 그의 소박한 바람은 부브니의 거대한 새 압축기와 노동자들을 만나고 산산이 부서진다. 젊은 노동자들이 술 대신 우유를 마시고 쉬는 시간엔 그리스 휴가 계획을 떠들면서 아무런 고민도 감정도 없이 일하는 걸 본 한탸는 처음엔 모욕감을 조금 지나서는 절망감을 느낀다.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변화 앞에서 그는 결국 오래된 압축기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로 선택한다. 그동안 읽은 소설 중에서 손꼽히게 충격적인 엔딩이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나니 납득이 되었다. 한탸에게는 끝까지 자기가 사랑한 일과 삶을 지키고자 하는 존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팠던 문장은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113쪽).”였다. 한탸의 절망이 가장 깊고 진하게 배어 있는 부분이다. 책을 읽고 나니 ‘과연 책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글쎄, 거대한 사회변화의 흐름 앞에서 고작 책이 무슨 수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책은 우리에게 무엇이지? 책 읽기는 왜 중요하지? 여러 다른 질문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한탸에 비할 바는 아니나 책은 나에게도 각별한 존재다. 무료할 때, 외로울 때, 지식과 지혜가 필요할 때 언제든 가까이할 친구이자 보물창고가 되어준다.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살면서 종종 좁은 폭 안에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책은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혀주고 몰랐던, 혹은 모르고 싶었던 세상의 한 부분에 빛을 비춰준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다가 내 마음 같은 표현을 발견하고 밑줄을 그었다.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할 능력은 없지만 비난할 능력은 있는 사람만을 양산하는 척박한 현실에서, 책과 글쓰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 이해의 심층에 도달할 수 있을까(16쪽).” 밑줄 아래엔 ‘책과 글쓰기의 쓸모’라고 적어두었다.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그의 저서 중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세상에 온 건 이 책을 쓰기 위해서라고. 그는 체코를 지배한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속에서도, ‘프라하의 봄’ 이후 이십 년간 자신의 수많은 작품이 출판 금지를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조국을 떠나지 않고 지하 출판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책에서 한탸는 비록 압축기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지만, 흐라발은 멈추지 않고 계속 썼고 결국 한 시대의 증언자가 되었다. 그는 책을 쓰면서 문학 안에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구원의 빛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존재론적 고민에 자기 삶으로 응답한 셈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통해 책을 지극히 사랑했던 인물, 자신의 직업에 대해 끝내 긍지를 잃지 않았던 한 인간, 한탸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늦은 나이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조국의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을 알게 되어 도전받았다. ‘읽고 쓰는 삶’을 인생의 키워드로 삼고 달려 나가는 요즘, 한탸처럼 읽고 흐라발처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감히 따라가고 싶은 좌표를 발견하게 해 준 책,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던진 여러 질문 덕분에 가을 한 달이 고독하고 소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