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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Jun 04. 2021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가닿기를

서랍 속 일기장에서 브런치로 옮겨온 이유

  

“요즘 글 쓰느라 고생이 많지?”      


  첫 인사가 바뀌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늘 아이들 잘 있느냐, 애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하셨는데,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글쓰기 안부를 먼저 물으신다. “잘 읽고 있어. 글 너무 좋더라.” 지인들의 구독, 라이킷, 댓글에 감읍하는 요즘.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처음으로 조회 수 1000이 나오던 날(이제는 그게 오픈빨(?)이었음을 안다), 나보다 더 고무된 남편은 한술 더 떠서 “매일 전업 작가 마인드를 가지고 쓰라”며 압력을 넣었다. 온종일 쌓아놓은 설거지를 군말 않고 해치우고 다음 날 먹을 카레도 끓여놓는 서비스까지. 안팎으로 넘치는 격려를 받고 있다.  

    

  목요일 밤마다 격주로 진행되는 <다독이는 합평반> 줌 미팅이 끝나고 나면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고민. 다음 글은 또 뭘 써야 하나···. 이미 과거가 된 일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생생한 현재를 담고 싶기에 이번 주에 내 마음을 두드리는 한 가지 주제를 세심하게 고른다. 그렇다. 요사이 내가 가장 마음을 쏟는 건 다름 아닌 글쓰기. 이번 글에서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이전과 이후에 대해, 브런치라는 세계로 인도해준 귀인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새해 첫날 읽었던 책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라는 장편소설. 열댓 명이나 되는 다양한 등장인물 중 제일 감정 이입했던 인물은 난정이었다. 아이가 아픈 이후로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해 끝없이 읽는 것으로 자기를 보호했던 사람. 그런 난정에게 시어머니인 시선은 그만큼 읽었으니 이제 글을 쓰라며 채근한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는 거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때 난정은 “저는 읽는 걸 좋아하는 거지 쓰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라고 단언한다. 평생 독서광으로 살았지만 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난정의 흔들림 없는 말에서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그래,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꼭 쓰기로 연결되어야 하나. 왜 꼭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내야 하지? 읽기 그 자체만을 향유해도 좋지 않을까?


  사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던가. 내가 가장 절실하게 글을 썼던 때는 역시 사는 게 힘이 들 때였다. 하도 울고 다녀서 남편이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봉선화”라고 놀렸던 시절,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사람과 쉽게 나누지 못한 마음을 일기장에 풀어내며 버텼다. 그렇게 쌓인 일기장이 몇 권.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때 여행이 떠오르듯 글을 쓰려고 하면 힘들었던 감정도 같이 떠올라 넘실거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내 글은 늘 서랍 속에만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단 책을 하나씩 세상에 내놓는 걸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언젠가는 나도?' 하는 소망을 품어 보지만 역시 꿈같은 이야기 일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쓰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강하게 올라왔다.


  지난 2월, 대학 선배 언니가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라고 권했을 때도 나는 주저했다. “그런데 언니, 내 일상을, 특히 힘들었던 시간을 팔아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이 강할수록 내 보잘것없는 일상을 구구절절이 쓰고 싶지 않은 마음, 나의 한숨과 눈물을 굳이 써서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때 언니가 해준 조언.      


“파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야.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너의 경험을 나눌 때 그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 게 아닐까. 우린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쳤잖아. 정인아, 너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pain point)에 대해 써봐.”      


  아, 파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구나. 멋지고 매끈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울퉁불퉁한 내 삶의 부분을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내 고군분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타인을 향한 글쓰기로 한 발짝 더 나가보자, 글쓰기에 대한 인식 전환은 그렇게 일어났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 그간 여섯 편의 글을 올렸다. 주로 소소하게 아이들 키우면서 겪은 갈등과 깨달음, 남편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조금 더 나아가 사회문제에 관해서도 썼다. 늘 궁금한 건 독자들의 반응. 이제 나는 수시로 조회 수 통계를 새로 고침 하고, 댓글 하나에 울고 웃는 사람이 되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과 함께 위로를 받고 갑니다.”      


  박사논문과 육아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하는 후배가 남긴 댓글을 보며 공감과 위로라는 단어에 밑줄을 긋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동지의식은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 일어설 힘을 준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가닿았으면. 다시 나에게 돌아와 다시금 쓸 힘을 주었으면. 그 순간을 상상하며 오늘도 책상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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