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를 피했더니 계란 테러리스트에게 당하다.
글쎄, 내가 감정이 무딘 걸까? 아니면 정말 그런 외국인 차별을 못 당해본 걸까?
남의 나라에서 밥 빌어먹고 산 햇수로만 25년이 넘는데, 아직까지 당해보지 못했던 인종차별을 시칠리아에서 경험했다.
코로나로 인해 유럽의 항공편들이 거의 멈췄다가 2021년 10월부터 조금씩은 풀어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 남들이 하기 전에 뭐라도 해야 빈틈이 있을 것 같아서 보르도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항공편을 구입했다.
인터넷에는 항공편을 타기 전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하고, 양성 반응이 나오면 격리 고해 야하고,,, 온갖 겁주는 정보들이 넘쳐났다. 어떤 사람은 2주일 여행 계획 세워서 시칠리아를 갔는데, 양성 반응이 나와서 2주 동안 호텔에서 자가격리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항공편을 타고 왔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스토리를 인터넷에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이란 가슴 뛸 때 가는 게 아니고 두 다리가 움직일 때 가는 거라고 했다.
가자! PCR 검사 결과 음성. O.K 한 단계 장애물 넘고, 시칠리아행 비행기에 짐을 싣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항공기 안은 3류 심야 영화 극장처럼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비행기의 뒷자리를 보니 사람들이 더 없었다. 어쨌든 간 접촉은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징어 게임'처럼 슬금슬금 뒷자리로 이동을 해서 내가 예약한 자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좌석에 앉았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뒷자리 편하게 앉아있기는 하지만 항공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까지의 기다림이 정말 길다는 것을,,, 혹시라도 자리 잡고 앉았는데 늦게 탑승한 사람이 '여기 제자린데요'라고 하면 그것처럼 무안할 때가 없다. 걱정은 단순히 걱정으로 끝나고 내가 확보한 자리 변동 없이 비행기는 이륙을 했다.
자,, 이제 두 번째 관문이다. 시칠리아 공항에 내려서 내 나름대로 준비해온 백신 QR코드, PCR 음성 서류, 호텔 예약 정보, 시칠리아 이동 계획,,, 등등 한 뭉치의 서류를 들고 조마조마 한 마음으로 입국 심사선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근데 이게 뭐야? 입국심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없다. 마치 수능 시험 친 다음날 고3 교실처럼 횡~하다. 입국 심사 자체가 없으니 내가 서류철에 준비해온 코로나 관련 서류들은 바로 쓰레기 처리가 됐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는 단지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했다.
그래도 지기 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 나름 준비를 해놓은 것에 후회는 없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칠리아에서의 11박 12일! 달려보자.
인터넷으로 찾아놓아던 가볼 만한 곳들.
장소 이름과 주소만 적어왔으니 이제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내 노력과 운에 맡길 뿐이다.
렌트한 차량에 갖고 온 짐을 싣고 악세 레다를 밟으면 된다.
소금밭에 가서 맛도 보고,,, 역시 이탈리아 소금도 짰다.ㅎ
옛날 국회의사당 같은 곳이라던데, 저때도 부동산 정책 갖고 머리통 터질 때까지 싸웠나 싶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얼굴이 알려진 샌디 위치 가게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를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한국 유튜버가 영상을 찍고 있길래 나중에 알게 된 맛집.
여긴 어디?
안터지던 화산이 터져서 한국 뉴스에도 나왔던 화산 폭발
위의 사진들처럼 11박을 다니면서 구글 검색에 시칠리아에 가볼 만한 곳들은 내 나름대로 가 본 것 같다.
사진은 더 있지만 여행 자랑질은 여기까지만 하고,,, 제목에 나와있는 테러리스트 이야기를 해보자.
시칠리아의 가장 큰 도시는 팔레모였다. 아름다운 성당도 많고, 음식도 다양하고 또 와인도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와인들이 많았다.
앞으로 이틀 후면 다시 보르도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과 내일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새끼발가락에 티눈이 내 뒷골을 자극해도 많이 봐야 한다는 무모함으로 하루 25000보 이상을 걸었다. 미친 거지. 이게 여행야? 하면서도 또 언제 여기를 오겠냐 하는 생각에 신발 바닥에 고무 탄 네가 나도록 걸었다.
사실 팔레르모 시내는 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치가 않고, 주차비를 낼 정도면 그냥 버스로 이동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렌트한 차량은 호텔에 찡박아놓고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때 사건이 터진다.
팔레르모 가는 버스를 대략 기억으로 15분 정도 기다리니깐 저쪽 편에서 팔레르모로 가는 버스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물건은 없는지, 가방은 잘 닫혀있는지, 주머니 속의 핸드폰과 지갑이 잘 있는지, 프로야구 게임의 코치처럼 버스정류장에서 마카레나 춤을 추며 확인을 했다. 마카레나 춤을 추는 동안 버스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 버스표를 빼서 다른 기다림 없이 버스에 올라타서 삑~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으면 된다.라고 생각을 했을 때 뭔가 '툭'하는 느낌 들었다. 그 순간에 스쿠터는 나를 휙 지나서 전진 또 전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부딪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지 뒤로 지나가던 사람이 가방을 살짝 부딪친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내 옆에 서있던 젊은 여성의 옷에 계란이 묻어있었던 것이다.
그 여성의 얼굴 표정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뭔가를 불평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에 대한 불평이 아니고 본인 옷에 튄 계란 노른자를 보며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고 가방을 보니 내 가방에도 계란이 튀어있었다.
아,,, 사건의 전개와 결말은 이렇게 추리를 해볼 수 있었다.
내가 버스를 기다릴 때 '툭'하고 느낌이 있었던 것은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던 2인 1조의 싹수없는 계란 테러리스트 들였고, 내 가방에 맞은 계란은 나와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이탈리아 젊은 여성의 옷에 튄 것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다친 사람은 없었고, 불행 중 불행은 젊은 이탈리아 여성이 아침에 곱게 차려입고 나온 옷에서 하루 종일 계란 비린내가 날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 중 꼼수는 그때 내가 버스 카드를 안 찍었다. 혹시 버스카드 검사를 하면 '내가 여기서 계란 테러를 당해서 경황이 없어서 못 찍었다'라고 변병을 둘러대려고.
다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은 없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외국 밥 먹은 지 25년이 넘는데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테러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