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로 살깍기 4
흔히들 말하는 갱년기 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 3시경에 눈이 떠진다. 알람을 맞추어놓은 시간은 5시 50분 그리고 6시다. 6시에 일어나면 되는데 5시 50분에 미리 한 번 눈을 떠서 이불속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3시경에 눈을 뜨면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순찰 돈다. 그러다가 눈이 뻐근해질 정도가 되면 '자야 하는데' 하며 눈을 감아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쓸데라고는 한구석도 없는 잡념만 머릿속에서 빙빙 돈다. 대부분의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꼭 새벽 5시 정도가 돼서야 다시 잠이 오려고 한다는 점이다. 차라리 6시까지 깨어있으면 바로 골프장으로 향하면 되는데 꼭 1시간가량을 남겨놓고 잠이 밀려온다.
새벽 기온이 제법 내려가서 라운딩을 나가기 전에 나름대로 몸을 풀어보려 한다. 팔 벌려 뛰기도 하고 팔 굽혀 펴기도 하고 늘어나지도 않는 힘줄을 늘려보려고 최대한 사지를 벌려본다. 오늘도 다른 할아버지들이 나가기 전에 내가 첫 번째로 나가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준비 운동이 빨라진다.
그러는 사이 저쪽에서 자동차 라이트가 들어온다. 아,, 할아버지들의 출근이구나. 빨리나 가야겠다 하는 생각에 골프백을 짊어지고 출발한다.
기온이 제법 내려가서 잔디에는 서리가 내려져있다. 아무런 발자국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첫 번째로군!
뒤돌아서 걸어온 발자국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같이 라운딩 하는 할아버지들도 없고 혼자서 쭉쭉 치고 나가면 되겠구나!라는 즐거운 생각을 하려는 순간 저 앞에서 시커먼 물체가 나한테 달려오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멧돼지 같지 않았고 큰 개 같아 보였다.
그런데 개의 머리통 크기가 농구공만 했다. 순간의 생각이었지만 저 개가 나한테 달려들면 아이언으로 막아야 하나 아니면 드라이버, 아니 그래도 퍼터가 짰고 강도가 있으니깐 퍼터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날은 할아버지들도 안 보이고 나 혼자란 말이냐~ 인생 정말 뜻대로 안 되는구나!
개는 나한테 달여왔지만 들 개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골프장 주변에 있는 집에서 키우는 게 아니면 골프장 옆에 있는 말 목장에서 키우는 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오른손에 퍼터 꽉 주고 개의 동태만 바라보고 있었다. 개는 아무 생물체가 없는 골프장에서 나 같은 생물체가 있어서 반가웠는지 좀처럼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내 주위만 어슬렁거린다.
어쨌든 간 안심이다. 처음 다가왔을 때 물지 않았으니 앞으로 물릴 확률은 나하기 나름일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아주 조신하게 걷고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걸었다.
그런데 얘가 특히 열이 체질인지 잔디 쌓인 서리 위에 배 깔고 앉더니 좀처럼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다.
'야, 비켜' 괜히 내가 탑볼이라도 나면 쟤한테 굴러가면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대들을 수 있다는 걱정에 좀처럼 샷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개와 나의 대치 시간은 2~3분 정도가 돼가는 듯했다.
2분, 3분이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새벽 댓바람에 전혀 모르는 개와 서로 마주쳐다보고 있는 시간으로는 꽤나 길게 느껴졌다.
'야, 좀 가라' 속으로 외쳤지만 개는 왠지 자기와 놀아주었으면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갖고 있는 골프공을 집어던지면 계속 놀아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난감했다.
그러다가 개도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지 눈치챘는지 슬금슬금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 그쪽 좀 멀리 가봐. 그러면 너하고 놀아줄 할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어.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쭉 가라.
골프 치면서 살 빼는 것까지는 좋은데 새벽에 세렝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큰 짐승과 마주한다면 그냥 살쪄서 있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