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학
그날도 평소처럼 새벽 5시 반부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바나나 두 개 챙겨서 골프장으로 향했다. 동트기 전의 적막함 그리고 그 주변에 코 끝이 시릴 정도로 상쾌한 공기를 쭈~욱 빨아 당겨서 폐 속에 가득 담았다.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잠깐이라도 몸을 풀고 밤새 굳어있던 근육을 깨우기 위해 온 몸을 털었다.
충분하지는 않은 준비운동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나가는 것을 피하려면 요 정도면 됐겠지 하고는 필드로 향했다.
살짝 내린 이슬에 찍힌 발자국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오늘도 첫 번째군! 자, 출발이다.
잔디를 밞는 폭신함과 육각수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린 쪽으로 갔다. 그런데 여름이라 그런지 중간중간에 스프링 쿨러가 작동돼서 필드에 물을 뿌려주는 것이었다. 이 정도 이슬로는 잔디에 수분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찾으니 내 공이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
뭐야, 첫 홀부터 벙커 연습을 하게 만드네! 그린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9번 아이언을 들고 들어갔다. 아주 잘 맞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9번갖고 벙커에서 잘 빠져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벙커에서 나오려는 순간 다리 종아리에서 물고기 부레 터지는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펑'도아니고 '팡'도아닌 소리와 함께 눈앞에 세상이 어두어지고 귀에서는 라디오 주파수 잡는 소리가 들렸다. 몸은 움직이질 않고 세상은 불 꺼진 연극무대처럼 캄캄해져만 갔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가족들한테 아무 인사도 못하고 가면 이건 너무 미안한데' 이런 상상을 하는 짧은 시간 사이 어두웠던 세상은 조금씩 밝아지면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 죽는 건 아닌가 보구나' 그런데 발이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조금 전 물고기 부레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던 오른발이 꿈틀거리기는 하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내가 벙커에서 공을 치고 나오면서 벙커와 잔디가 만나는 부분에서 오른발이 미끄러져서 종아리 근육이 찢어진 것이었다.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은 이때 하는 것 같다. 그나마 첫 번째 홀이었고 조금씩은 걸을 수가 있었다.
골프장에서 곧바로 의사한테 갔다. 의사는 내 다리를 보더니 고개를 꺄우뚱했다. 평소에 한 장 써주던 처방전을 오늘은 몇 장을 프린트해서 주는 것이다.
X-ray를 찍어야 봐야 하니 이거 가지고 가서 예약하고, 이것은 물리치료하는데 가서 제출하고, 이 종이는 약국 가서 약을 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시켜주는 일들이 벌어진다.
엑스레이 찍으러 갔더니 접수 보던 직원이 메모장에다가 홈페이지를 적어준다. 그리고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네! 하면서 웃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재촉한다고 들어줄 분위기는 절대로 아니었다.
아래 사진에 동그라미 친 날짜를 살펴보면 내가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서 인터넷에 접속 날이 6월 11일인데 가장 빨리 예약을 잡을 수 있는 날짜가 6월 24일였다. '아니 엑스레이 찍는데 거의 2주를 기다려야 하나,,'
그나마 다행이지 뭐야! 같은 년도에 예약이 됐으니,,,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물리치료 예약은 또 어떤 시련을 줄지? 벌써부터 머리 근육이 꼬이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구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물리치료받을 수 있는 곳을 검색을 했다. 2, 3킬로 멀지 않은 곳에 몇 군데가 검색 결과로 나왔다. 전화를 걸어 예약할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예약이 다 찼고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들 뿐이었다.
다를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ㅎㅎ
몇 번의 전화를 돌려서 그나마 겨우 찾아낸 곳이 4일 후에 예약할 수 있는 물리치료사를 발견했다. 발견이라는 표현보다는 비트코인처럼 채굴했다고 이해하면 조금은 공감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종아리 비복근 파열 치료는 시작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배드민턴, 테니스,, 등등으로 근육이 찍어지면 4Cm 정도 찢어진다고 한다. 나중에 2주 후에 엑스레이 결과가 나와서 확인한 결과 8Cm 찢어졌다는 것이다. 나에게 새로운 경험은 찢어진 길이가 아니고 엑스레이를 찍으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내 가슴이 더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