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프랑스 정착 시도

17개의 파란 눈동자들

by 보르도대감

우체국에서 일이 터졌다.

시차 탓인지? 아침 5쯤 되면 누가 누가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자동 기상이 된다. 한국시간은 오후 1시 정도인데 왜 잠이 깨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자는 식구들을 깨지 않게 물 한 모금 마시고 살~금 살~금 걸어서 컴퓨터를 켠다. 그런데, 나만 조용히 움직이면 뭐하나? 노트북이 오래돼서 그런지 팬 돌아가는 소리가 웬만한 돼지갈빗집 후앙 돌아가는 dB(데시벨)이 나온다. 보르도에 와서 아침은 항상 이런 식으로 시작이 된다.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받아온 비자를 가지고 이곳에서 체류증을 신청해야 한다. 이 체류증 신청을 OFII(이민국) 사무실에 가지고 가서 하는 게 아니고 우편접수를 해야 한다. 사람 얼굴을 보고 설명해도 프랑스어를 모르는 나에게는 눈앞이 깜깜한데 어떻게 작성해야 하고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늘이 노랗다.

그런데 와이프가 한 마디 한다. ” 대사관에서 비자 줄 때 같이 동봉한 서류에 작성요령이 한글로 있어”라고.

그래서 그 종이의 뒷면을 봤더니 작성 방법이 아주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설명도 아주 눈에 익숙한 한글이다.

이제부터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글씨를 써서 여권 복사하고, 비자 복사, 증빙서류,,, 등등 모든 서류들이 준비됐으니 이제는 우체국에 가서 등기로 보내면 된다.


사건은 우체국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주차를 하고 우체국으로 갈 때 나는 내 딸내미하고 같이 갔다.

딸내미하고 같이 간 것은 '동정심 유발'이 오늘 나의 작전이었다. 내 딸 매미가 프라이어 할 줄 알아서 데리고 간 것이 아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특히 아빠와 같이 손을 잡고 있는 광경에서는 웬만하면 다들 감정이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욱 친절하다는 것을 오랜 기간 외국에서 밥 빌어먹고 산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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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들어서니 '서부 영화에 나오는 총잡이가 Bar안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 없이 한번 Bar의 내부를 둘러보듯이' 나도 180도 시야에 들어오는 우체국 내부를 눈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본인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을 서 있었다.

다시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저쪽은 돈 처리를 하는 곳 같고 또 한쪽은 우편업무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소포를 보내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음~~~ 저기구나' 그리고는 딸의 손을 조금 더 꽉 잡고 줄을 섰다. 내 앞에 한 사람 한 사람 줄이 줄어들 때마다 내 등에서 흐르는 땀의 양은 한 방울 한 방울 늘어만 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 깊이 숨 한번 들이마시고 봉~쥬~~. 그랬더니 우체국 직원도 봉쥬, 그리고는 또 시작이다. 내가 알아들을 수없는 말로 우체국 직원은 나를 향해 무엇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특급 빠른 등기우편을 프랑스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빠른은 영어로 fast라고 하고 등기우편은 registered mail 이니깐 fast registered mail이라고 하면 되겠구나! 참 그런데 fast 보다는 express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아 'express regitered mail'로 악센트 줘서 말을 건네보자는 생각에 우체국 직원에게 '익스프레스 레지스터드 메일'이라고 말을 했더니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혀를 조금 더 프랑스 식으로 굴렸다 “엥스 뿌렁써 레지스 터 멜”이라고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영어의 표현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했는데 직원은 전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직원의 미간 주름 숫자가 늘어가는 모양이다.

에이 안 되겠다. 내 딸내미는 나만 바라보고 있고 쪽은 팔리고,,, 이게 무슨 딸 앞에서 무슨 개망신인가?

나도 이제는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랐다. 동정심이고 작전이고 나발이고 그냥 세계 공용어 바디랭귀지로 이 난국을 돌파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글로 쓰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내 뒤에서 본인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6명 정도가 내 뒤에 있는 게 아닌가? 아! 정말 민폐다.

그래도 나는 이우 편을 특급 빠른 등기 우편으로 보내야만 한다. 에이 모르겠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나는 특급 빠른 등기우편을 바디랭귀지로 이렇게 표현했다. 편지 봉투를 들고 바람에 연 날리듯이 천천히 “슈~~~ㅇ~~ 웅” 하며 손사례를 치며 노(no)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가 보내고 싶었던 등기는 편지봉투를 공중으로 제트기 나르듯이 빨리 “쓩” 예스(yes).라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등기다. 등기를 프랑스어로 모르니 쓩 다음에 종이에 사인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직원은 바로 오케이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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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늘이시여 이게 통했단 말인가? 딸하고 나는 서로 보며 기뻐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이게 겨우 1차 관문을 통한 단계였다. 나보고 기계에서 뭘 사고 그리고 자기에게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다 설명했는데 뭘 또 사 가지고 오라는 건가?

더구나 내 뒤로는 사람들이 점점 줄을 더 길게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설명받은 기계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또다시 기계 앞에서 딸내미하고 나는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우리 둘에게는 이건 화면이고 이건 글씨고 이건 버튼이고,,,,이렇게 한 3분 정도를 기다리니 그 기계 뒤로도 또 줄이 시작되기 시작됐다. 오늘 난 완전히 “line maker” 가 됐다.

3명이 내 뒤로 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조금 전 그 직원이 다가오는 게 왔다. 설명이라기보다는 본인 혼잣말로 뭐라 하면서 직원이 다 해결해줬다.

아래 사진은 무게를 재는 게 아니고 은행업 무보는 체크 입력기인데 처음에는 체크 입력기 앞에 가서 편지 무게를 저려했었다. 지금에서야 웃을지 있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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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내용 같았다. 기계 위에 편지 무게를 재고 무게에 맞추어 돈 액수가 표시되면 돈을 내면 버튼을 누르니깐 스티커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결과를 보고 추리한 것이고 우체국 직원이 다 해주었다.

휴~이젠 끝난 모양이다. 기계에서 떨어진 스티커를 빼고 허리를 폈더니 내 뒤에서 벌어진 상황은 알 수가 없다. 우체국 직원이 나에게 와서 도와줬기 때문에 조금 전 소포 부치는 곳에 줄 선 사람 6명 그리고 내 뒤로 3명 17개의 파란 눈동자가 나를 원망하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9명인데 왜 17개 눈동자일까? 내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은 눈병이 났는지?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

말 못 하는 남의 나라에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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