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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서 살아남아야 한다.

자연과의 밀당

by 보르도대감

알람 시계를 새벽 3시 20분과 3시 30분에 맞춰놓았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 10분을 넣어서 3시 30분에 한 번 더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새벽시간 이불속에서의 10분의 달콤함과 여유로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인생 계획대로 되지 않듯 전날 마신 술로 탓인지 새벽 2시 30분에 화장실 가기 위해서 눈이 떠지고는 잠이 오질 않았다. 10분의 달콤함보다는 1시가 가량의 기다림이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흐트러진 옷가지를 입는 듯 걸치는 듯 몸을 둘렀다. 4월 초인데도 영하의 날씨다. 내가 이 새벽에 이 부지런을 떠는 이유는 포도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이다.

내가 사는 보르도 지역은 지금 포도나무의 싹이 틀 시기이다. 그런데 새순이 나올 시기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포도나무의 새순이 서리 피해를 입을 경우에 포도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극히 치명적이다.

그래서 프랑스 농부들이 서리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 받기 위해서 포도밭에 횃불, 촛불, 풍차,,, 등등을 이용한다. 나는 이런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새벽부터 부스럭거렸던 것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마을 이름 생떼밀리옹(Saint- Emilion)과 뽀므롤 (Pomerol)이라고 하는 두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가방에 주섬주섬 카메라, 고프로, 스테블 라이져,,, 등을 챙겼다.

사실, 나에게 이런 장비들은 많이 준비하는 만큼 효율적이지는 못하고,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 하나면 충분한 것 같다.


아래 사진은 1주일 전에 낮에 찍어놓은 뽀므롤의 포도밭 전경이다.

미리미리 저렇게 준비를 해놓고, 기온이 내려갈 때 저 흰색 통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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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가량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뽀므롤 지역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약간은 매캐한 냄새가 차량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아궁이 앞에 앉아있는 듯한 묘한 냄새였다. 시각적으로 불이 피워져 있는 광경보다는 슬금슬금 스며드는 냄새에 '아 시간을 제대로 맞춰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도,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닌 적당한 시간이었다.

차량의 창문을 내렸다. 마치 헬리콥터 네, 다섯 대 정도가 하늘을 나는 듯 붕붕붕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차량을 안전한 곳에 세우고 불 빛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당연히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옛날 동학 혁명운동 때 민중이 횃불을 들고 봉기했던 광경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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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핀 사람들은 거의 보이 지를 않고, 나와 같이 이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몇몇 사람들만 연기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포도밭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하나하나의 불들은 서리로부터 포도나무 한그루라도 피해를 덜 입게 하고 끝까지 지켜내려고 하는 농민들의 몸무림처럼 느껴졌다.

새벽 4시 반에 포도밭에서 불멍이라니,,, 프로펠러 소리만 새벽어둠에 흩뿌려지고 포도밭의 불멍 때리기에는 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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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새벽부터 달려와서 뽀므롤에서의 계획은 달성했다. 사진과 영상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느낌 등을 충분히 담아놓았다. 영상을 찍고 있던 손이 시릴 정도로 기온은 내려갔다. 다시 차량으로 돌아와서 온도를 확인하니 영하 1도로 나오고 있다.

다시 차량을 생떼밀리옹으로 향했다. 뽀므롤과 생떼밀리옹은 거리상 멀지는 않다.

생떼밀리옹으로 진입하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포도밭의 전경을 형용사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진한 인상을 주었다. 면단위에서 살다가 특별시의 야경을 보는 듯한 감동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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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은 평상시의 생떼밀리옹 사진이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횃불이 밝히는 생떼밀리옹은 또 다른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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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들이 서리피해를 입으면 그 해는 포도농사를 거의 짓지 못할 정도이다.

물론, 얼마큼 피해를 입었느냐에 따라서 포도의 생산량은 달라지겠지만 많겠는 70% 이상을 피해를 입은 농가들도 많았다. 평상시의 30~40%의 포도 수확만으로는 와인을 만들지 않는 샤또(와이너리)들도 많다.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적으로 더 비싼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와인 하고는 별개의 문제이다.

물론, 다른 이유로 생산량을 적게 만드는 것과 자연피해를 입어 생산량이 준 것 하고는 다르다.


서리 피해를 입은 포도나무와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사진은 불과 4m의 거리 차이를 두고 일어난 현상들이다.

같은 주인, 같은 포도밭, 같은 날이지만 다른 점은 거리가 4m 정도만 떨어져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샤또 주인도 왜 그런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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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밀당이라는 소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포도나무들이여 부디 서리피해로부터 끝까지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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