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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03. 2020

불멸이 다가온다.

수이사이드클럽, 레이첼 헹, 김은영옮김, 북로드

60이면 환갑잔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60대는 중년에 속하는 것 같다.

주위에서 보는 어른들의 모습도 그러하고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던 나잇대의 모습은 아 것을 보니 인간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노인이 될 시기가 되면 140살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불멸의 삶은 문학작품에서도 종종 다뤄졌던 소재다.

드라큘라부터 장기이식을 위한 복제인간을 그린 작품까지 사람들은 영원을 꿈꾼다. 그런데 과연 불멸이 좋은 것인가. 그 불멸의 기간이 괴롭다면? 몸이 아프고 먹을 것이 없고 주거의 공간이 없다면 그리고 삶이 지리해서 그만 죽고 싶은데 정부에서 그것 조차 막는다면.


 수이사이드 클럽은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던  정부가 불멸의 삶을 이룰 수 있는 유전자를 선별해서 라이퍼로 분류하고 특별 관리하는 이야기이다. 비 라이퍼, 즉 일반적으로 정해진 수명만 사는 사람들에 비해 라이퍼는 주기적으로 장기를 교체하고, 피부를 이식하고 정해진 단백질을 공급받으면서 수명을 연장한다. 그리고 비 라이퍼에 비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불멸의 인생을 부여받는 것이다.



스마트 기후, 인공지능 냉방, 최첨단, 그놈의 빌어먹을 최첨단.


하지만 정부의 걱정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온갖 새로운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여전히 줄어들었다. 정부 당국은 라이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영생의 삶을 포기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방치했다간 미국은 세계 지배의 종말을 맞이할 테고 그것은 그들에게 재앙이었다. 그렇게 조직적인 중상모략이 시작되었다.




러한 불멸의 삶에 반기를 든 라이퍼들의 모임인 수이사이드 클럽에서는 스스로의 삶을 끝내는, 즉 자살을 방조하고 도와준다. 정부에서 금지한 술을 마시고 구운  고기를 먹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간다.  라이퍼로서 완벽한 삶을 살고 있던 레아에게 수이사이드 클럽이 다가온 것은 어린 시절 본인의 잘못을 덮어쓰고 떠났던 아빠가 그녀 곁으로 돌아오면서부터이다.

 불멸의 삶에 회의감을 가졌던 아빠가 떠나고 엄마와 레아는 아주 철저하게 주류의 라이퍼로서 살아왔는데 아빠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삶은 균열이 생기고 불멸의 삶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새뮤얼이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할 때, 아빠 얼굴에는 사랑이 넘쳤다. 아빠가 일상의 평범한 일들 하나하나를 어찌나 정성 들여 닦았는지 오빠가 하는 이야기는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성공담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있었던 일들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갔고 기억에 남는 일도 별로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 맞이 하는 일들은 세세한 장면과 느낌보다는 전반적인 사실로 남았다. 어디에서 누구와 사귀었는지, 지난 70여 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등등. 하지만 연인의 숨결에서 풍기던 냄새라든가 처음 의뢰인을 놓쳤을 의 굴욕감 같은 것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때로는 너무 많이 잊고 사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기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녀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빠는 아빠의 선택을 했고 그녀는 그녀의 선택을 할 것이다.


가령 날씨 좋은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팔다리가 멀쩡하다는 단순한 사실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오늘이 그런 날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불멸의 삶은.

 그러니까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인데, 지리한 일상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레아의 아빠가 레아의 오빠인,  비 라이퍼로 분류되어 고작 70년을 살다 간 새뮤얼의 사소한 이야기를 정성 들여 들어주는 일상들이 너무나 먼 시간들이 되어 버리는 것. 추억을 쌓을 거리는 더 이상 없는 인생이다. 뛰는 것도 금지, 창문을 여는 것도 금지, 오래 일하는 것도 금지. 고기를 먹는 것도 금지, 오직 음식은 정부에서 지정한 건강에 좋은 것들 뿐.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이런 삶을 유지하기만 하면 정부는 불멸을 약속해주는데 왜 사람들은 그만 삶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것도 불멸이 약속된 라이퍼들이.


 너무 똑같은 일상이 반복돼서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그제 같고. 내일도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가 있다. 무탈한 게 행복한 거라며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삶의 지리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삶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나도 이 삶에 반기를 들게 될 것 같다.

더 이상의 일상은 무의미하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피부를 이식하고 장기를 교체하는 일들은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 유한한 삶인 것을 아는데도 이렇게 지리한 삶을 견뎌내는데 무한의 시간 속에 있다면 남아있는 그 시간에 압도되어 버릴 것 같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이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로 빠져들었던 소설이다. 지금의 나보다 더 긴 삶을 살아내야 할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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