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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10. 2020

나는 관계 속에서 언제나 을이었다.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 신소영. 웅진지식하우스

작가의 이전 에세이가 좋았고

그 이전에 브런치에서 읽던 작가의 필력이 더 좋아 이번 작품도 선뜻 구입했다.

항상 어려운 인간관계에 대해 다루었다길래 더욱 반가웠던 게 사실

나는 언제나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

부끄럽게 고백해보자면 중학교 시절 내내 왕따를 당했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들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의 따돌림의 경험 때문이었겠지만 내가 항상 아쉬운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없다는 것. 나는 언제나 관계에서 힘들었고 약자였다.  

 



내 이상을 흔드는 크고 작은 바람은 언제나 불기 마련이고, 그 바람의 강도는 늘 내 선택에 따라 허리케인이 되지고 하고, 미풍에 그치기도 한다.


문제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으로 알게 되는 자신의 결핍을 실패나 패배로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마음속에 불던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내 삶의 결핍이 많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보여서 무언가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은 바로 그거다. 서로를 부러워할 수 있는, 그래서 더 멋지고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자신만 모르는 횡포 (제일 좋았던 챕터)'

가만 보면 화를 내는 것만큼이나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를 잘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다든지, 실컷 잘 떠들다가 어느 순간 단답형으로 답을 한다든지

그러면 그 순간부터 긴장이 됐다. ' 저 사람 왜 저러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그러면서 눈치를 보게 됐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내내 찝찝했다. 넌지시 물어봐도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게 뻔하데도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는 자기 혼자 풀려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하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러웠다. 이유도 없이 당하고 또 이유도 모른 채 받아줘야 하는 일이 반복되지 농락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 감정과 기분에 빠져서 나의 감정 받이를 해야 하는 다른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야 비로소 안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건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배설해서는 안 된다고 자각했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감정을 잘 소화시키지도 못하면서 침묵으로 다른 사람을 눈치 보게 만드는 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을 배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계에서의 갑질이다.


그러나 꼭 지키고 싶은 관계, 지켜지는 관계는 있기 마련이다. 바로 신의를 깨지 않도록 '서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관계다 


각자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비슷했다. 누가 더 낫다는 건 없었다.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 중에 "오늘 뭐해?"라든가 "같이 저녁 먹을까?"라고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좋은 사람과 행복한 시간 보내"라는 무심한 메시지가 다였다. 이쯤 되면 마음에 '섭섭이'가 들어앉는다.

' 그 좋은 사람이 너이면 왜 안 되는 걸까?'


영원한 관계는 없고, 사람은 썰물처럼 흘러가는가 하면 밀물처럼 들어오기도 한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혼자 있는 시간도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초연하다. 때로는 내 쪽에서 먼저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리를 두며 관계를 정리하기도 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일 확연히 줄었고, 쓸데없는 감정 소비도 줄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느새 관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느닷없이 찾아온 심심함은 어쩐지 조금 따끔하다.


내가 실제 태풍뿐만 아니라 인생의 태풍을 맞았을 때도 지체 않고 달려오는 사람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 화가 나더라도, 길을 잃었을 때 뜻밖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듯이,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다독인다, 난감하거나 화나는 일이 내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나한테 별로 소중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내가 좋은 것과 싫은 것에 대해, 수용하고 거부할 것에 대해 감정을 빼고 말하기 위해 애쓰게 되었고, 내 표현을 예전보다는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다 함께 걷는 상생의 꽃길을 깔고, 함께 놀기 위한 판을 짜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사실 누구나 그런 존재가 절실하지 않은가


'내 꽃길은 내가 깐다'는 정신으로


나같이 작고 미미한 존재가 만들 수 있는 작은 리그는 어떤 것일까. 오래 일하고 싶은 내가 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계속 답을 찾으며 문을 두들리고 있다. 또 한 번 거하게 나를 위해 낭비할 날을 기대하면서


누군가 나의 행복을 이렇게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건 목이 메도록 고마운 일, 나름 '행복이 별건가, 하루하루 만족하면서 사는 거지' 라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오고야 말 행복'이 도착하는 순간 별스럽게 눈물샘이 툭 터져버렸다.


그때 우리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솔질하게 속내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겪지 않았으면서 나들 다 하는 거 왜 유난인가 하는 마음이 손톱만큼은 있었고, (나는 비혼이라서 함부로 편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되는 걸 싫어하면서) 남편, 자식 다 가졌으면서 자유까지 바라나 하는 마음도 발톱만큼 있었다. '결혼하면 왜 다 똑같아지나' 하면서 일반화하기도 했다.


어떤 삶이든 고민과 고충, 고통이 있기 마련이고 누구든 그걸 말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 아닐까,

첫 번째는 잘 거절하는 사람이다.

다른 편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이슬아 작가다. <일간 이슬아>라는 획기적인 구독 서비스로 그녀가 한창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섭외하기 위해서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메일을 확인하고 다음 날 답신 메일이 왔다.

 

 보내주신 메일 감사히 받았습니다. 제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고, 이렇게 섭외 제안 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세 달간 <일간 이슬아> 관련해서 서른 번 가까이 인터뷰를 하느라 이미 하고 싶은 말은 다 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인터뷰에 응하는 건 그저 동어반복일 것 같아 잘 힘이 나지 않습니다. 유의미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창작 활동을 계속해나가야겠습니다

 언젠가 또 좋은 기뢰호 뵐 수 있도록 부지런히 쓰고 생계도 유지해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태도다, 그 사람의 글보다, 말보다 훨씬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


독일 작가의 책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비중이 꽤 높다는 걸.


포기하는 건 실패가 아니고 다른 걸 찾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에 무거운 진지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명랑해졌다.


재주가 없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아서 놓친 즐거움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즐기면서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면 실망해서 포기해버리고 운동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더 중요한 건, 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몰랐다.

 

영화 속 사랑을 찾는 나이 든 여성들이 섹시하다고 느낀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아에 대해, 타인에 대해, 관계와 세상에 대해 생생한 성찰이 있었다. 덕분에 지금 있는 익숙한 곳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 다른 관계로 나아가며 성장했다. -영화 북클럽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섹시한 할머니가 되는 것.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밑줄 그은 문구가 너무나 많아서 전부 다 옮겨 보았다.

나에게는 모든 챕터의 글들이 주옥같았고 인생선배의 내밀한 고백을 듣는 것 같아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내 삶의 결핍이 많아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라거나 포기하는 것은 다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들. 그리고 나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배설해서는 안된다는 것 같은 주옥같은 말들...


 최근에 한 친구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당했는데 마침 그때 읽고 있던 책이라서 참 다행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으니까. 또 하나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는 것. MBC 로고송 같은 '만나면 좋은 친구'인 그녀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네가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끝까지 기다려서 너의 성공을 함께 축하해 주겠다고 그녀가 말을 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당시의 울컥했던 나의 마음도 생각나고...

이렇게 하나의 에세이집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것은 참 오랜만이다.


작가님의 전작인 [혼자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라는 책도 씩씩한 비혼의 삶을 아주 진솔하게 내보여주셨었는데 이번 책도 여전히 작가님의 그 진솔함이 나와 반갑고 고마웠다. 나는 앞으로도 이 작가님의 책을 찾아 읽을 것 같다. 항상 만나고 보는 친구는 아니지만 인생을 먼저 가는 언니로서, 선배로, 친구로서 이렇게 진솔한 조언과 응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작가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뒤따라가는 청춘들을 위해서 부디 씩씩하게 잘 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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