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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19. 2020

소비하는 삶에서 생산하는 삶으로

여전히 급여가 밀리고 있다. 20200910


월급은 들어오는 그날.  다시 빠져나간다.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가 싶게 숫자로 놀이하듯.

입금은 파란색. 출금은 빨간색.


올 초부터 제 날자에 급여가 나오지 않았다. 빠르면 5일, 보름, 종국에는 한 달을 건너뛰고 두 달 분의 급여가 한 번에 지급되기도 했다. 매달 벌어 한 달을 사는 급여생활자로서 급여가 밀리는 것은 당월에 지불해야 할 공과금과 이미 써버린 카드값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이고 당장 생활비가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더 어려워졌다면서 직원들의 이해를 바라던 경영진은 투자금만 들어오면 이 사태가 해결될 거라며 희망을 보여줬다. 그런데 벌써 9월이고 지금까지 9번의 월급날이 지났지만 약속한 날짜에 나온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급기야 이번 달은 언제쯤 주겠다는 약속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직원은 마이너스통장을 알아본다 했고. 적어도 반이라도 줘야 생활을 할 것 아니냐고 따져 묻는 직원도 있었다.


 우리는 매달 열심히 일했다. 바로 급여가 들어오는 그 날을  위해서. 그런데 지불을 약속한 사람은 경제가 어렵다 고통을 분담해달라면서 지불을 미루고 우리에게 희망고문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온 나라 경제가 파탄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직 직장을 잃지 않았고 밀리기는 하지만 급여가 나오고 있으니 감사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당장 급여가 없다는 것은 아주 불안하다.

게다가 이미 퇴사한 직원들의 퇴금도 지불하지 못해서 인사팀으로 계속 독촉 전화가 오고 노동부의 압박이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 이거 나도 빨리 발 빼야 하는 건가? '  내 퇴직금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당분간은 버텨볼 생각이다.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중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되는 모습까지 함께했던 곳이다. 힘들어졌다고 당장 발빼야겠다는 마음이 선뜻 들지 않는다. 사실 회사에 대한 애정은 많이 정리가 된  상태다. 이미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고. 동료들과도 상사와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떠나도 아쉽지 않을 만큼의 애정으로만 다니고 있다. 사실 당장 할 일을 대비해놓지도 않았으니 지금 나가봐야 할 일 없는 백수밖에  더 되겠나 싶은 생각도 있다.

 멋진 누군가처럼 이른 은퇴를 착실하게 준비하지도 못했으니 회사가 우리 망했으니까 이제 좀 나가줄래 할 때까지 꾸준히 다녀 볼 생각이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월급은 좀 제 날자에 주면 참 좋겠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카드값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로 내 쫓기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래서 오늘 또다시 결심해봤다.

소비하는 삶에서 생산하는 삶으로 살아보자고 매달 급여를 믿고 신나게 소비하면서 살아봤으니 이제는 뭐라도 좀 생산하면서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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