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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28. 2020

선뜻 휠체어를 들어주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퇴근길이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게이트를 통과해 5호선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본인이 타시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퇴근길의 그 복잡한 인파 속에서 천천히 계단을 짚어가고 계셨다.

  내가 본 순간과 거의 동일시점에 한 남자분이 휠체어의 앞쪽을 잡았고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젊은 친구가 한쪽 손잡이를 잡았다. 마치 우리 같이 들까? 하고 말을 맞춘 것처럼.

무심하게 두 청년할머니를 도와 계단에서 휠체어를 내리고 무심하게 서로 가던 길로 갔다.

 나는 순간 조금 놀랐는데 휠체어를 드는 그 순간이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이렇게 쉽게 도와줄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역병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두 청년은 그게 무엇이냐 싶게 휠체어를 번쩍 들어 계단 아래로 내려놓고 가던길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너무 각박한 세상에 살았던 것인. 짧은 순간 일어난  모습에 놀랐던 것 같다. 출퇴근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배려나 양보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직장으로 가는 지옥철에 반드시 몸을 실어야 하는 사람들은 그 순간이 생존싸움이니 다른 사람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노인이라고 약자라고 하더라도 배려를 기대할 수 없는 공간이 바로 출퇴근시간의 지하철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본 것은 무엇인가? 퇴근 시간이라서 조금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선의를 베푼 것인가?


 약자를 배려하라고 배웠는데 그 모습을 이 이렇게 놀라고 낯선일인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도움을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의도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고맙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놀란 내가 창피하고 슬퍼졌다.


조금 슬픈 퇴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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