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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03. 2020

보고 싶어 만나는 가족이라...

2020추석을 지나면서 2019,6,16에 쓴 글을 보았다

보고 싶어 만나는 가족이라... 2019,6,16


부모님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신다.

우리는 삼형제고 위로 결혼한 오빠, 아직 싱글인 언니, 그리고 나. 조카들까지 하면 가족들은 모두 아홉이다. 부모님 집에 모이는데 이젠 조카들도 한 자리씩 차지할 나이가 되어 비좁게 느껴진다. 좁은 집이지만 부모님은 자주 자식들을 불러 모으고,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허지웅 씨가 동생에게 이렇게 써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의무감에 만나는 가족이 아닌 서로 만나서 즐거운 가족이 되” 정확한 문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문구를 읽고 우리 가족이 생각났다. 주말이면 불러들이는 부모님, 매번 거절하지 못해서 모이는 삼 형제, 우린 과연 즐거워서 만나는 것인가. 의무감에 만나는 것인가. 우리는 아주 친밀한 가족은 아니었다. 오빠가 결혼을 하고 조카가 태어나면서 가족 모임이 잦아졌고 내가 결혼을 하면서 더욱 만나는 시간이 늘어난 상황이었다. 이렇게 자주 보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지난주부모님 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우리 집은 가족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민감한 주제의 대화는 피하는 편이다. 주로 정치나 사회통념에 반하는 대화들. 그런데 이 날은 어찌하다 보니 정치에 관한 주제가 떠올랐고 정치에 민감한 오빠는 언성을 높여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오빠가 어찌나 소리를 지르면서 말을 하는지  귀가 아플 정도여서 큰 조카에게 ‘너희 아빠 왜 저러니’ 하고 농담조로 말을 했더니,


‘이건 그냥 토론이여, 토론’  

‘아후, 알겠어, 아빠 편이야’

‘고모도 할아버지 욕하면 싫잖아.’


어린 조카가 한 말이고. 다 맞는 말이었지만. 한편으로 뜨끔하면서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무리 잘해줘도 본인 가족뿐이구나. 조카라고 물고 빨아도 결국 나는 남이구나 하는 마음이랄까. 아이가 없는 나는 조카들이 너무 예뻤고, 가끔 볼 때면 바라만 봐도 행복해질 정도였는데, 이미 변성기가 오고 있는 큰 조카의 저 말을 들은 순간. 너무 서운하고 서러마음이 몰려왔다.


  아마도 그건, 내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오빠 아이들인 조카들도 그것이라도 생각해서 일까. 그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아빠일 텐데, 우리 아버지는 다정하긴 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우리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결혼한 오빠는 조카들이 생기고 나서 본인 가족들을 위해서 살고 있다. 이게 당연한 일인데, 결혼 이후로 부모님은 신경 쓰지 않는 오빠가 미웠고, 어릴 적 상처가 크게 자라 긍정적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리라.

 맞벌이셨던 부모님은 거의 집을 비우셨고, 함께 살던 외할머니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분이셨다. 무엇을 먹든, 사든 모든 것은 오빠 위주였고, 쓸데없는 계집애들이었던 언니와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머니가 자리를 비울 때, 가끔 오빠는 언니와 나를 때렸다. 크느라 그랬다고 넘기기에는 오빠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무서워서 나는 장롱에 숨은 날도 있었더랬다. 집에 없는 척하고 싶어서. 오빠와 두 살 터울이었던 언니는 나까지 오빠한테 맞는 것을 막아보려고 오빠와 맞서다가 더 크게 맞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친척 언니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오빠가 언니를 때린 것을 보고 놀라서 엄마에게 말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친척 언니에게 부모님께 말하면 내쫓아 버린다고 하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언니는 부모님께 알리지는 못했지만 오빠보다 서너 살 많았던 언니는 오빠에게 크게 화를 내었던 기억이 난다.     

 오빠는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동생들을 위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조카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을 수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나의 감정이 나와 오빠 자식에서 아빠 욕을 한 나쁜 고모가 된 것이다. 뜨끔하고 서럽고 너의 가족만을 챙기는구나 싶은 조카에게 서운함이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이미 다 커버린 조카에게 아빠 욕을 했으니 내가 얼마나 미운 고모였을까. 순간 아이가 없는 내가 서러웠고 결혼을 하지 않은 언니가 걱정이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의 가족을 만든 오빠에게 부모님과의 모임은 의무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섭섭해서였는지 그 순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의견을 말하고 있는 오빠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허지웅이 말한 우리 가족은 보고 싶어 만나는 가족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의무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보고 싶어 만나는 가족이 아님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너희 아빠 욕을 한 게 아니야, 아빠가 소리 지르는 게 싫어서 네가 좀 말려줬으면 해서 말한 거야.라고 조카에게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이의 눈을 피해버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내 편이 되어줄 아이가 없는 게 서럽고, 아직 혼자인 언니도 걱정이 되어 주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의 한마디에 이렇게 마음이 무너지다니 나는 정말 유리 멘탈인가 보다.


 오빠는 다정하지 않았고

 우리 집은 따뜻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대부분 취한 상태였고, 취하지 않은 상태는 직장을 잃은 상태였다. 엄마는 항상 본인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그런 가족이 한 달이면 두세 번을 모인다. 모임의 주체는 거의 부모님이지만 그 초대를 거절하지 못해 우리는 또 모인다. 서로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위태로운 대화를 피해 가면서.

 다 큰 조카의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별거 아닌데, 아이에게 아빠를 나쁘게 말한 내 잘못인데 싶다가도 아빠를 감싸는 조카를 보면서 적어도 오빠의 가족들은 유대감이 좋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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