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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Sep 15. 2020

김치가 떨어졌다.

엄마와는 친해지지 못했다.


김치가 떨어졌다.

김치는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데로 가져다 먹고 있는데 여름내 잘 먹던 열무김치도. 고구마순 김치도  갓김치도 똑 떨어졌다.

지난해 담가 온 김장김치 말고 이제 새김치가 먹고 싶은데 엄마 집에 가고 싶지가 않다.


도보로 20분이면 엄마 집이고 새김치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당장이라도 담가주실 텐데.


가끔 가족이 버거울 때가 있다.

가족이 있어서 참  좋은데 가족이 있어서 마음의 짐이 생기기도 한다. 엄마는 평생 일을 하셨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버지 대신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엄마가 끊임없이 일을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외할머니였을 것이다. 4 자매 중 막내였지만 첩을 들인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와 같이 쫓겨나  13살부터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을 한 우리 엄마.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엄마와 살았다. 조실부모한 아버지와 엄마. 자식 셋까지 내가 스무 살 때까지 우리는 여섯 식구였다.

엄마 입장에서는 부모를 데리고 시집 온 격이었으니 외할머니 몫까지 돈을 벌어야 했을 것이다.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남편만 믿고 있다가는 자식 셋과 같이 손가락만 빨게 될게 뻔했으니.

 엄마는 항상 바빴고. 아빠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들 손주만 챙겼다. 저녁이나 되어야 잠깐 보는 엄마는 항상 피곤에 지쳐있었고 어떤 날은 아빠와 싸우고 어떤 날은 말도 안 하고 어떤 날은  매타작을 하기도 했다. 매타작의 대상은 거의 언니와 나 둘 중하나였다.

 아들이 없어 첩에게 쫓겨난 외할머니에게 아들 손주는 너무 귀해서 감히 손도 못 대게 했으니 엄마의 화풀이 대상은 언제나 언니 혹은 나. 둘 중 하나였다.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아닌 계집아이 둘이 맞는 것은 그럴만한 일이었으니.  종일 잘 놀다가도 엄마나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려나. 혹시 또 큰소리가 나려나 하는 불안감.

이런 환경이다 보니 두 살 터울의 언니에게 나는 더 기대게 되었다. 부모와 의논해야 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언니와 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피부질환인 아토피가 심해져서 왕따가 된 상황이라거나 과학 캠프에 가고 싶다거나 진로 문제 같은 것들. 이제와 돌아보면 고작 두 살 터울의 계집아이 둘이 서로 의지하는 모양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에게는 잘 키워준 부모님은 계셨는데 감정의 부모님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가장 필요할 때 엄마는 없었고, 친밀감을 키울만한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냥 부모가 불편하다.

  

 결혼 준비를 하던 그즈음, 서른이 다 된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퇴근해 오실 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빠는 또 술에 취해오실 거고 그럼 또 큰소리가 날 테고 지긋지긋한 싸움이 반복될 테니 어서 집을 탈출하고 싶었다. 엄마는 몰랐겠지만.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군 복무 중이었는데 내 의지가 70%인 채로 결혼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가 제대하기까지 3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드디어 편안한 내 공간이 생긴다는 것 결혼의 설렘보다도 더 크게 기뻤다. 산동네 작은 빌라였지만. 더 이상 저녁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너무나 커서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엄마와 감정적 유대 없이 지냈는데 이제 우리가 다 크고 나니 이제야 엄마는 우릴 찾는다. 같이 여행하고 밥 먹고 수다 떨기를 원하는데 나는 그런 엄마가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평생 그런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친해지길 원하시는 것이. 마치 어제까지는 따돌림을 주도하던 아이가 오늘은 친해지자고 하는 것만 같다.

 우리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으나 부모님은 충실하게  교육을 받게 해 주셨고 크게 모자람 없이 클 수 있게 책임을 다하셨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나는 항상 궁핍했다. 외로웠고 집이 편안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언제나 지옥이었다. 부모탓을 할 만한 나이는 훌쩍 지났음에도 어릴 적의 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했다. 친정에 가있는 날이면 심장이 두근 거린다. 혹시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건 아닌지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건 아닌지.

 내 가정은 절대 불안한 분위기로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엄마와 아빠처럼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는. 그런데 가끔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었는데 그런 행동을 한 내가 가장 놀라고 슬픈 그런 행동들.

  

 그런 모습들을 더 닮을까 봐.

 친하지 않은 엄마와 친한 척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편해서 친정집에 가는 것이 편하지 않다.

비록 엄마가 날 위해 새 김치를 담그고 새 밥을 준비해 놓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엄마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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