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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09. 2016

나는 사무실의 책상위에서 이 책을 읽었다

사표의 이유, 이영롱, 서해문집, 2015

오늘 또 로또복권을 샀다.

월요일 아침 혹은 눈물이 줄줄 흐르던 어느 하루의 끝 무렵.

습관처럼 사들였던 복권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작정하고 집을 나서면서부터 꼭 사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지난주는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오던 주간이었고.

주말을 보내는 내내 알수 없는 설움에 눈물 바람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어느 그룹의 콘서트장에서 노래를 들으면서도 훌쩍,

 TV의 로맨틱드라마를 보면서도 훌쩍.

회사 생각만 나면, 아니 정확하게는 상사 생각만 하면 훌쩍.

이렇게 울고 있는 내가 억울하고, 멍청하고 병신같다는 생각에 또 훌쩍.

그냥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억울하고 갑갑한 나날이었다.

그래서 샀다.

생계만 해결된다면 이놈의 회사 때려치고 말지.

자아실현 그런 거대한 이념은 기대도 안 한다. 아주 작은 그  어떤 보상도 없는데,

이런 남성중심주의의 폭력적인 회사 따위, 그래 너나 잘 먹고 잘 살아서 승승장구 해라.

라고 해주고 멋있게 나와야지 싶어서

오늘 또, 로또복권을 샀다.



 한 때는 번듯한 사무실에 내 책상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컴퓨터가 놓여있는 책상.

내가 사회생활이라고 할 만한 회사에 입사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이 지났을 쯤이었다. 당시 내 책상에 컴퓨터는 없었다. 한팀이라고 할 수 있는 3명의 직원이 사용하는 공용컴퓨터만 한대 있었을 뿐이었고, 내 컴퓨터를 갖고 멋진 사무실에서 일하는게 한 때의 바람이었는데. . .

금, 그 소박한 소원을 이뤄졌으나 또 다른 고민들이 슬금슬금 피어난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가.. 다닐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뎌야 하는 것인가. 이런 대우조차 견디지 못하는 것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

『사표의 이유』에는 내가 처한 현실들이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김종현이 다니던 출판사도 비슷한 전철을 밝았다. 역시 '으싸으싸 하는 도전정신'의 분위기가 있던 초기에는, 회사 상황이 내부에서 잘 공유되었고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의 모임이 있어 서로의 관계를 쌓아갈 기회가 잦았다. 작은 규모이기도 했고,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던 직원들이라 호흡이 잘 맞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서로 성장해 가는 경험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 직원이 늘고 규모가 확장되고 출판사에 계열사 개념이 도입되면서, 내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몇몇 소수만이 아는 상황이 되었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버티는' 신입직원들과 여전히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열정적인 기존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동료들끼리의 밀도도 떨어졌다. 예전에는 복도에서 만나도 무슨 팀 누구 인지 다 알 수 있을 정도 였는데, 이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라 인사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익명화 되고 경직된  직장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p126


차장급 부장급으로 가야되는 사람들은 회사 옮기기가 어려우니까 최대한 붙어있기 위해 노력하지 자기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부각시키려고 하고, 그들만의 술자리가 잦아지고, 부장급이 어울리는 술자리에는 꼭 참석하고 팀장급은 워커홀릭이 될 수밖에 없어. 그래야 좋은 평가를 받으니까 p160


피고용자로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업무에 지치고 고통을 겪지만 동시에 이 괴로움은 '고용되어 있기에' 느낄수 있는 '자기만족적 괴로움'이라는 이중 감정 속에 놓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p179


'내가 날 책임진다'는 것이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p290


소속감에 대한 갈구가 항상 있는 거 같아요, 제가 회사를 나오니까 진짜 허무하더라고요. 어디에 소속돼 있으면 좀 편할 텐데, 대학원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니니까 공허하다고 할까요, 정말 가만히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있었어요 p296


30대 중반에 퇴사한 김종현도 다른 맥락에서 사회적 요구와의 불합치성을 경험하게 되었다. 퇴사 이후 대안학교 교사 채용의 장벽을 자신의 나이에서 부딪칠  때마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엔 이미 늦어버린게 아닌가'하는 불안함 감정이 든다고 했다. 자신의 물리적 나이가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기준에서 이미 쇠퇴해 있는 듯한 생각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p300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소득의 전문직 근로자들과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직장인들이었다. 고소득 근로자의 경우에는 외국기업에서의 경험도 있는 그야말로 전문직군이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도 제 2의 삶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등장인물들 모두 현재 한국 기업의 한계를 느끼고, 또 직업의 한계를 느껴 회사 밖으로 나왔지만, 이제는 회사 안에서보다 더한 경쟁과 시장의 논리를 맞닿뜨리게 된 경우도 있다.

 제 2의 삶을 추구하기에는 늦은 것 아닌가. 괜히 직장 때려치고 나온게 아닌가 하는 불안은 보고서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비혼이었고 기혼에 아이까지 있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소득 근로자였던 그들은 말할것도 없고. 나머지 사람들도 비혼에, 책임질 가족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 2의 삶을 위해 사표를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본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런 삶을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모두들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산다지만, 실행할 만한 용기가 쉽게 나는 것은 아니다.

 책임질 가족과 경제적 이유와 생계에 대한 두려움 등. 우리가 쉽게 내리지 못한 결정을 내려준 그들의 삶을 아주 조금 들여다 본 것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먹고살만한 상황에서의 신념은 가능하다. 였다.

 그들은 당장 굶어죽을 만큼 가난하지 않았고, 사회적 자본주의가 어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사회를 경험했고, 그 사회에서 배운 능력으로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더라.

 지나치게 비편적일 수 있으나. 나는 그렇다.

 결국 책임지지 않을 것들이 많아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주도로 이끌어 나가기로 결정한 그들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나는 쉽게하지 못할 결정이기에. 나는 그저  '고용되어 있기에' 느낄수 있는 '자기만족적 괴로움' 을 계속 느끼면서 살게 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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