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 이전 후 남편은 가능하면 퇴근길에 나를 데리러 온다.
지하철이 편한 나지만 본인이 데리러 오는 게 좋다는 남편을 거절하지 못하는 건 마음이 약해서.
남편은 영업직이다 보니 거의 종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당연히 차는 블루투스로 설정되어 있고 본의 아니게 그의 통화를 듣게 된다.
물론 나는 없는 듯이 아무 소리도 없다.
시어머님과 통화할 일이 있어 퇴근길 차 안에서 그가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2주 후 있을 시댁 결혼식에 본이 혼자 가겠다는 말을 전한 그에게
시어머님은 나는 왜 안 가니 라고 물으셨고.
남편은 친정에 일이 있다고 둘러댔는데 그 바로 다음 대답은.
어금니를 꽉꽉 깨물면서 하시는 말씀.
" 건 방 진 기 집 애 "
그 이후로 이어진 대화였는 내가 건방을 떤다는
즉, 본인 말대로 안 하고 반기를 든다는 것이고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가족일에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건강진 계집애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내가 대체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본인이 원하시는 대로 아무 말도 없이 다 따라다녔고 남편에게 성질을 낼지언정 어머님 앞에서는 전혀 표 낸 적 없는데
아. 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어머님께서는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
사촌 형수들도 아무도 안 오지 않냐는 남편의 방어가 이어졌지만, 어머님은 건방진 것들 안 가도 된다 이제 시댁에 발걸음도 하지 말아라 하시며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그것도 모자라 카톡으로 오지 말라고 시댁은 발걸음도 하지 말라는 문장을 아주 단호하게 보내셨더라.
말 한마디에 예민한 나는 '건방자 계집애'라는 말에 흥분해서 길길이 날 뛰었고
시댁에서 어려워야 할 며느리에게..
듣고 있지 않다고 저런 말들을 내뱉는 게 정상이냐며 남편에게 화를 쏟아냈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님은 며느리 험담을 아주 찰지게 하신 거다. 내가 남편을 조정해서 본인 집안일에 안 가겠다고 한 거라고 아주 시건방진 계집애라는 거지.
그동안 어머님이 보여주였던 행동들에 대한 생각은 없으시고 오직 안 가겠다는 나의 결정에만 화가 나셔서는.
나는 또 억울한 것이 결혼식에 대한 일은 남편이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안 가겠다 가겠다 한 일조차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미리 선수 쳐서 친정에 일이 있으니 못 간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던진 것인데 그 불똥이 나한테 튀었다.
험담 좋아하고 음흉스러운 어른이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단어가 주는 화남이 가라앉지 않는다.
건방진 계집애.
본인 딸도 시댁에서 저런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시겠지 내 딸은 너처럼 안 그런다고.
세상 대부분의 시어머님들은 본인 아들은 최고, 딸은 아주 못하는 게 없는 잘난 딸이다.
고로 내 아들 최곤데 며느리가 조정해서 이상한 애가 되었다는 것.
다 큰 성인이 누군가 시킨다고 듣나?
남편이 내가 시킨다고 그렇게 하나? 절대 아니다
건방진 계집애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만큼 나는 건방을 떨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시댁에서 밥만 먹으면 체하고 겨울에 보일러를 틀지 않아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던 명절에도 그저 나는 네네 했을 뿐.
집안에 큰소리가 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상
나로 인해 무언가 소란이 나는 게 싫어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넘겼던 날들.
우리 엄마도 말실수하지 않나 싶은 마음에 내 의견 따위는 없이 살았는데
돌아온 건 건방진 계집애다.
이런 단어에 예민한 내가 싫은데 자꾸자꾸 생각이 나서 울컥울컥 한다.
시어머님에게 사과하시라고 싸워볼까도 싶지만
70년 넘게 저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그 대단한 자존심에 안 보고 살면 안 보고 살지 절대 사과하실 분은 아니지.
또 내가 참아야 하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
안 들었으면 모를까
이미 들어버린 이상 내 표정은 관리가 안될 테고 앞으로 그분을 보는 게 더욱 껄끄러워질 것 같다.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하시니 그분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음흉스럽게 대하시겠지.
앞뒤가 다른 분. 정말 어렵다.
네이트 판에서만 읽던 상황이 나한테도 일어나다니 진짜 기분 더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