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다녀왔다
나의 장례식에는 꼭 올 사람만 초대할까 하는데.
지난 주말 시댁 어르신의 장례식이 있었다.
부고를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가고 싶지 않다 였다. 그 주 내내 체기가 있어 몸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어른들과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특히 시어머니와의 동행은 피하고 싶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나쁜 분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분은 참 쉽지 않다. 자기주장이 아주 강한 분이시고 수다스럽기도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언행. 특히 자식들을 무시하는 언행에 거침이 없으시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에 내가 특히 그 분과의 동행을 부담스러워했던 경험들은 이렇다.
남편의 외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은 어머님의 지시로 축의금을 받는 자리에 있었고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결혼식에 어머님과 참석하게 되었다. 식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어머님은 나는 안중에도 없고 혼자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수다를 떨고 종횡무진이었다. 결혼 후 첫 시댁 결혼식이었으니 나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시가족들은 쟤가 누구냐 하는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다. 배려가 있는 분이라면 며느리 소개도 시키고 같이 다니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들이었는데 그날 나는 괜히 서러워서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남편이 돈을 받고 있으니 혼자 돌아갈 수도 없어서. 그 일 이후로 다시는 시댁의 경조사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끌려다니고 있다.
또 다른 상황도 비슷한 상황인데 지난 경험으로 난 시어머님과 함께 가는 결혼식은 절대 가지 않겠다 했지만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참석하게 됐다. 2시 예식에 이모님들과 약속이 있다며 12시까지 가야 한다던 어머님 말씀에 꼭두새벽부터 집에서 출발해 시댁으로 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식장에 도착해보니 이모님들과 약속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고 남편을 다시 축의금 받는 자리에 앉힐려던 속셈이셨다. 절대 미리 말씀하지 않으시고 마흔 넘은 아들 며느리를 본인 뜻대로 휘두르고 싶으신 분. 게다가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라 위험하니 식장은 안 들어가겠다시며 본인은 식장 밖에서 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고 사람 북적이던 곳에 아들은 밀어 넣어두던 분이다.
미리 말씀하셨으면 내가 가지 않을 것을 알아서 당일. 그 장소에서 거절도 못하게 말씀하신 것을 안다. 그날 하셨던 말씀 중에 내가 기함을 토했던 것은
"니까짓 것들이 하라면 해야지 거절을 해. 어릴 때는 안 그러더니 애들이 계산적이네."라는 말씀.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로 일찍 도착하게 하고 양해도 없이 축의금 데스크로 밀어 넣는 건 괜찮고 축의금 받지 않겠다는 남편은 계산적이고 거절도 하면 안 되는 애 취급을 하셨다. 일찍 만나기로 약속하셨다던 이모님들은 식장 도착해서 혼주에게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셨고. 축의금 데스크에 남편이 있어서 우리는 식이 모두 끝나고 정산할 때까지 결혼식장 밖에서 기다렸다. 게다가 식당도 위험하니 식장에서 식사도 안 하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나와 어머님 사이에서 남편은 곤란해했고 그날 결국 우리는 다퉜다.
이런 상황들이 계속되다 보니 나는 시어른들과 동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고 이번 장례식도 시외가 쪽이라 더 가기 싫었다.
나이가 들면 철이 들고 성숙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냥 속을 감추고 있는 것뿐. 오히려 더 편협해지는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역시 어머님은 본인이 하고 싶은데로 아들을 면박 줘가면서 우리는 나몰라라 하고 여기저기 다니셨고 내 표정은 아주 다행스럽게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추억도 관심도 없으니 내가 왜 그곳에 있는지 피곤해 죽겠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내내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자꾸만 미움이 커져서 큰일이다 싶었던 날.
내 장례식에는 나의 죽음을 꼭 애도해 줄 사람들만 오면 좋겠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말고. 나 보다 모두 먼저 떠나서 아무도 올 사람이 없다면 그것 또한 괜찮을 것 같다.
진심으로 나의 안녕을 고해 줄 사람들만 있는 소박한 인사의 장소에서 떠나는 것. 나는 앞으로 올 나의 죽음을 그렇게 준비해야겠다.
20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