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가만히 보게 된다.
어릴 때는 없었던 그의 입가 주름들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이 어느 날 눈에 들어오더니 그의 웃는 모습을 볼 때면 웃음보다 주름에 더 눈이 가게 되었다.
거울을 보다 내 흰머리를 발견할 때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지는데 주름지기 시작한 그의 웃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인지. 남편은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다. 나 또한 예민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편인데 남편은 나보다 한수 위다. 결벽증일 정도로 깔끔하고 외출할 때면 잠긴 현관문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코로나 이전부터 과하게 손을 씻었던 그인데,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나서 손을 자주 씻으라는 권고를 가장 반긴 사람이 아마도 나의 남편일 것이다. 예전에는 과하게 손을 씻는 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는 그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더 편안하다고 한다. 본인이 유난스럽게 보이지 않아서.
우리는 20대와 30대를 함께 보냈다.
아이가 없는 부부인 우리는 20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육아를 겪어보지 않은 부부는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라던가 동지애가 없어 끈끈하지 않는다더라 하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피로 묶인 생명체를 키우면서 겪어내는 어려움을 체험하지 않은 부부는 그저 연인일 뿐이라는 논리인 듯한데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의 모습도 가족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신혼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중년을 맞았다.
서로의 일에 충실한 주중을 보내고 -물론 지금의 나는 의도치 않은 안 식기를 보내고 있지만 - 주말은 각자의 본가에 다녀오기도 하고 가끔은 가벼운 여행도 하면서 평안한 일상을 공유한다. 두 사람 다 수다스럽지 않고 오히려 과하게 말이 없는 편이라 우리 집은 적막이 흐를 때가 더 많다. 이제는 이마저도 익숙해져 그 적막감이 아주 편안하다. 누군가 집에 방문해서 평소와 다른 소음이라도 들리면 불편함을 느낄 정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평안함을 찾아가는 것 같다.
조용하고 적막한 집, 우리 둘이 내는 작은 생활 소음, 서로의 불편함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관계, 생활을 공유하는 안정감. 우리도 싸우고 토라지고 화내는 일상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서로의 기분을 배려하는 편이다. 물론 24시간 케어해야 하는 아이가 없어서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간혹 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이렇게 둘이 아이도 없이 지내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불안감도 엄습하지만 지금 나는 대체적으로 이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다.
주름이 조금 짙어진 그의 얼굴을 보면서 느꼈다.
아, 나는 지금 편안한 상태구나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주름이 지면서 호탕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그 얼굴.
오늘은 그 얼굴이 뭉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