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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May 07. 2024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자존감의 상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비란,

남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것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세 번의 여자팀장님을 만났다. 처음의 팀장님을 제외한  두 분의 팀장님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었는데 저렇게 못돼먹을 수 있을까 싶은 분들이었다. 외모를 포함한 시선, 동작 모든 것에서 풍기는  에너지에서 독함이 느껴지는 첫인상도 같았다.


 이직 전 회사에서 뵈었던 처음의 팀장님은 부드럽고 섬세한 분으로 팀원들을 아우르며 팀을 잘 이끄셨던 분이다. 강하게 보이지 않지만 강했던 분으로 유약함으로 포장된 강함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 강강약약의 태도로 팀의  분위기는 항상 유연하고 좋았다. 

 

 새로운 직장에 나이 많은 신입으로 이직을 하면서 윗분들에 대한 이런저런 상상도하고 마음 굳게 먹자 하며 단속하긴 했지만, 그간 좋은 동료들 틈에 일하면서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사실 대비했다고 한들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똑같이 힘들 것 같다.


  첫 번째 상사를 제외한 두 분의 상사는 모두 지금 회사에서 만났다. 이직 후 만난  첫 상사분은 표독스러운 표정과 거친행동으로 나의 행동과 대화에 수시로 트집을 잡았다. 내가 걱정했던 모습 그대로의 여자 팀장이었다.

 두 번째 만난 분은 다수와 있을 때 입으로는 상냥한 말을 내뱉지만 눈은 웃지 않고, 일대일 상황에서는 직급으로 찍어 누르면서 독한 말을 서슴지 않는 분이었다.


 편견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성팀장의 모습은 두 가지다. 유연한 태도로 주위사람을 이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빠른 실행력과 세심한 배려를 겸비한 본받을 만한 리더가 첫 번째요.

두 번째는 내가 만난 그녀들. 강약약강의 태도를 고수하고 일단 찍어 누르고 보자는 태도. 본인이 우위에 있다 생각하고 예의 없는 행동으로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팀장이다.

   신규팀으로 배정될 때마다 여자팀장님이라 하면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꽉 깨물어진다.  지난 시간 겪어온 예의 없는 그녀들과 같은 사람을 만날까 봐. 그런데 아주 신기하게 하늘은 항상 상상하던 그대로의 팀장을 보내주었다.

 이것도 끌어당김의 법칙일까?


 두 번의 만남 모두, 첫 만남에서 반갑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이가 많은 내가 팀원으로는  불편할 것 안다 나는 너의 말을 잘 들을 테니 지내보자는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는데...

 첫 번째 그녀는 이렇다 저렇다 할 답변도 없이 몽총하게 빤히 쳐다봤고 두 번째 그녀는 나를 무시했다.  그녀들 모두  첫인상은 바뀌지 않아서 함께 하는 내나 나는 괴로웠다.

업무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직한 나는 젊은이들에 비해 습득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해서 더 열심히 듣고 모르면 묻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질문을 가져가기 전에 더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잔뜩 긴장한 채 상사를 찾아란다. 


 나보다 어렸던 첫 번째 그녀의 특기는 인신공격이었다.


-이거 몰라? 대체 왜 모르지? 이게 왜 이해가 안 되지?

 

 반말은 기본이고 심부름은 디폴트다. 함께 점심을 먹자던 어떤 날은 얼굴 앞으로 현금을 던지면서 떡볶이룰 사 오라고 시키기도 하고, 작성해 간 문서에 마침표가 있다면서 마침표를 지우라고 계속 다시, 다시, 다시  를 시전 했다.  팀원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나만 꼭 집어


-업무에 집중하세요


 라는 말을 던지고 내 컴퓨터를 거칠게 치면서 메신저 확인하라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다.  다른 팀원들보다 속도가 느려 딴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인지 그 팀장과 일하면서 업무에 집중하라는 소리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었다. 관련문서만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대체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나이 많은 팀원을 기선제압해서 찍어 누르려는 심상인건지. 

 나중에는 화장실 가는 것까지 지적하면서 자리에서 옴짝달싹을 못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그녀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함께 발령받았던 분이 한 분 더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주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처음부터 본 척만 척하더니 정식 상견례는 2주나 지나서 하고 팀 워크숍은 신규발령자 빼고 기존 팀끼리 가고, 팀비로 먹는 간식, 커피타임에 우리는 없었다.

 함께 견디는 분이 계셔서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기는 했으나 일대일 면담에서 기대했던 만큼 능력이 없다느니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로 업무 계정을 줄 수 없다느니 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일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팀에 소속되어 있으나 아무 일도 없이 멀뚱하게 앉아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월급루팡이 된 듯한 기분도 그렇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에게 눈치가 보인다.

 이 분은 입으로는 웃으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던 분이었다. 업무특성상 영어베이스의 사업이라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영어가 부족한 우리들을 무시하기는 일수였다.


 발령 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기존팀원들과 인사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보름쯤 지나서야 팀 채팅방에 초대해 주셨다.


 근 두 달 만이었다.

그러면서도 내내 불편한 심기는 감추지 않았고 직접적인 업무지시도 없었다. 단체방에 무언가 지시를 던지면 그녀의 심복인 두 명의 팀원이 넙죽 받아 처리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업무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다. 팀 내에서 업무로 경쟁을 시키는 분이었다. 일을 던지고 그걸 먼저 채가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으나 내가 겪은 그녀들의 공통점은 강약약강이고, 윗분들의 총애를 받고 있으며 모든 일은 팀원들이 처리하고 그분들의 가장 큰 업무는 임원들과의 술자리였다. 또한 팀 내에 그들의 심복을 두었다. 


 음주를 썩 즐기지 않는 나는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사회생활에 부정적인데 이 두 분으로 인해 그 거부감이 한층 높아졌다. 두 분 모두 대다 한 애주가들이었는데 임원들은 술 잘 마시는 이분들을 참 많이 애정하셨다. 



  그동안 나는 꽤 일머리가 있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고 무엇이든 충분히 배울 의지가 있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배우면 더 빠르니 오히려 환영하는 편인데, 나보다 어렸던 처음의 그녀는 윽박지르기, 깍아내리기, 무시하기의 쓰리콤보로 참을성을 시험했고, 두 번째 그녀는 투명인간 취급으로 자존감을 상처 냈다.


모두에게 쉽지 않은 조직생활이지만, 누구나 나의 상황이 가장 아프고 괴롭지 않은가?!

이곳에서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여자팀장에 대한 선입견은 더욱 견고해졌고 여자팀장을 기피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여성임에도 그들의 불합리한 행동들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내가 벌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예전 나보다 나이 많은 팀원이 왔을 때 내가 어느 면에서는 그녀들처럼 행동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기도 했다. 


 나는 자존감을 깎아먹는 곳이라면 박차고 나와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나' 이기에 나를 상처 주는 것으로부터 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니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또, 

겨우 이런 것도 못 견디냐... 남들은 이것보다 더 한 것도 견디면서 회사 다녀, 약한 마음먹지 마 

라는 생각도 든다. 

도망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지난 밤 '내가 죽던 날'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순천댁 역의 이정은 배우가 했던 말 중에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라는 대사가 마음에 콕 박혔는데, 생각보다 긴 인생에 이 정도 어려움쯤이야 티클만한 것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팀장과의 문제, 긴 인생에서 별것 아닌 티클로 지나가길 빈다. 

그리고 그 두분들께 자비를 배풀어 나를 살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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