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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ul 31. 2016

이번에는 인도다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박민우, 플럼북스, 20170701


 무거웠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꽤 묵직한 책이었다. 작가는 원고를 마치고 두 권으로 묶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서 두 권의 책으로 묶었어야 했다. 콜까타와 다르질링의 이야기를 더 넣어서!!

 박민우는 믿고 보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또한 내가 실제로 만나본 작가 중 한 사람 이기도 하고. 박민우 작가를 처음 접한 건 [일만 시간 동안의  남미]라는 책을 통해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시아 편과 이전에 출간되었던 인터뷰집. 최근의 소설까지 그의 입담에 반해 출간되는 도서마다 찾아 읽었다.  솔직함을 넘어 인간의 원초적 본능까지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필력도 좋았고 꼭 친한 오빠의 여행담을 듣는 것 같아서 빠져들었다.

박민우 작가의 신작을 구입하는데 의심은 없었다. 나 대신 떠나고 나 대신 장의 예민함을 견디는 이야기를 나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읽기만 하면 되니까.

 여행 고수들은 인도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해 본 여행이라 함은 고작 적당한 리조트에 유명한 식당들을 가고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오는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 블로그를 미친 듯이 뒤지고 엑셀로 일정을 정리하는 일이 내 여행의 시작이었다면 이번 민우 작가의 여행은 20만 원짜리 에어아시아 티켓이었다.

 책을 열 권이나 낸 마흔 살의 작가가 할인항공권에 손을 벌벌 떨었다. 사실 잘 팔리는 책 한두 권만 내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그렇게 구한 항공권으로 그는 인도로 간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듣기에도 생소한 훈자라는 곳.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 훈자로 가는 길.  테러와 탈레반이 넘쳐나는 나라라는 것 외에는 파키스탄에 대한 정보는 어느 것도 알지 못했다.  아, 여행금지 국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이번 여행기는 조금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전에 여행지들은 한번쯤은 들어봄 직한 곳들이었고,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던 곳들이어서 상상이 가능했다면 훈자라는 곳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훈자라는 곳이 여행 지라기보다도 그저 제목이었나 싶었으니까.

 이번 여행에서도 그의 솔직함은 빛났다. 

 어른이 되면 질투심을 숨겨야 하고, 잘난 척하면 안 되고, 괜찮은 척해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질투심을 드러내고 불편함을 표출했으며 여전히 가격에 민감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대로인 그가, 나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여러 사람의 여행기를 잃어가며 대리만족하고 있는데 떠나고 부딪히고 격어내는 그의 경험들이 반갑고 종종 눈물이 찔끔 나 기도했다. 그의 솔직함이 반가워서,




사람들은 내 글이 솔직해서 좋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솔직함은 의무가 됐다. 한심하게 부들거리는 나도 다 까발려야 한다. 나는 크로아티아 여자와 마주치는 게 두렵다. 마주치게 되면 눈인사도 하고, 몸은 좀 어떠냐고 담담히 묻기도 하겠지, 입술은 떨릴 것이고, 후회될 말만 나불될 것이다. 얼마나 늙어야 능글맞아지고, 단단해질까? 성처의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새로운 사람과 엮이는 게 지긋지긋하다. 상처에 대한 보상으로 바다미의 풍경은 충분했지만, 그걸로 채워지지 않는 모멸감은 여전했다. 상처는 하루면 깨끗해져야 한다는 욕심이 초래한 부작용이기도 했다. p161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은 이민을 가도 안 뭉친다. 변변한 일본인 마을도 거의 없다. 현지인들에 섞여 현지인이 된다. 전부를 던지는 셈이다 불안하지만, 그 불안까지 받아들이는 과감함이 있다. 무섭다. 그렇게 몰입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진다. 되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고 싶다. p201


호들갑 떨 때야말로 ‘곁’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겁먹은 얼굴을 보며 깔깔깔 웃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p211


나이 마흔에 한참 어린 친구에게 왜 샘을 내서는 안되는가? 나도 관심받고 싶다. 나도 초대받고, 환영받고 싶었다. 부글거리는 질투심을 위장하기 위해, 웃는 척 입꼬리를 올렸다. 노트북에 대한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p238


누군가에게 ‘까이는’ 공포는 나만 심한 걸까? 겁이 난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한 사람의 거부는 세상의 거부를 의미하는 것만 같다. 같이 방을 쓰기 싫었던 이유도, 네가 싫어할 걸 아니까, 나도 싫어할래가 아니었을까? 늘 피곤한 이유는 이런 하찮은 것들로 곤두서 있어서가 아닐까, 타인의 거부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 서로가 반가운 인연 은평 생 열만 만들고도 차고 넘친다. p244


인간은 창자 안에 똥을 담고도, 몸에서는 피존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사람은 피죤 냄새만 인간의 냄새로 여긴다. 인도는 뜨끈한 내장을, 똥을 다 드러내 놓은 나라다. 쉽게 까발려지고, 쉽게 변명한다. 똥 냄새도 피죤 냄새도 펄펄 풍긴다. 차차리 솔직하고, 신나게 노골적이다. p253


묻다 보면 감동할 것이고, 감동한 만큼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런 변화가 싫다. p310


남의 사생활은 궁금해도 참아야 하는 것이다. 습자지처럼 얇은 관심을 핑계로 함부로 묻고, 함부로 쯧쯧 하는 행동은 굉장히 무례하다. 한국에선 일상이 돼버린 남 걱정은, 사실은 재밌어서 즐기는 악취미다. 나도 공범자였고, 그게 죄인 줄 몰랐다. 다 비슷하게 사니까, 우리도 비슷하게 참아야 한다. -443


장사가 안되면 어디든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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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철처히 겉만 핥는 존재이며, 겉을 핥고 돈을 쓰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밥벌이에 큰 기여를 하는 존재고, 없었던 활력과 새로움을 보증해주는 존재다. 훈자를 ‘알기’보다는 모르고 싶다. 미래가 없는 훈자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p449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는 부럽지 않았다. 나는 죽어도 그런 사람이 못 되니까. 목숨과 맞바꿀 만큼, 하고 싶은 뭔가가 있다는 게 부러웠다. 이걸 안 하느니, 죽는 게 낫지, 불같은 흥이 부러웠다.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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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왜. 

이 글을 읽는 내내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남의 인생이고, 남의 여행인데 왜 나는 자꾸자꾸 눈물이 나는지, 한여름의 만원 지하철에서 더위와 사람들에 치이면서도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는 것이 마치 숙명인 것처럼 찔끔찔끔 눈물을 찍어내면서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책을 다 읽어낸 것이 너무 아쉬워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그와 인도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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