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이 그려지는 속도감

7년의 밤. 정유정. 은행나무

by 이일영

출간 당시부터 꽤 인기가 있었고 호평이 많았던 작가다. 궁금하긴 했었으나 어쩐지 손이가지 않았고 작가의 신작이 나온 이제야 전작품의 끝을 봤다.



세령 마을 지도


묘사력이 어마어마하다.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문단을 읽을 때마다 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상황을 마주했다.

물에 잠긴 마을. 근처 수목원을 호령하는 젊은 의사. 떠돌이 잠수부들. 등장인물들을 놓고 보더라도 을씨년스럽고 우울한 이야기라는 것이 짐작되었는데. 이렇게 등으로 흐르는 땀까지 식혀줄 줄이야.


잠긴 마을의 이름을 딴 소녀가 살해된다. 수목원의 주인이던 소녀의 아버지는 딸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고 범인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목원 주인의 술수에 넘어간 범인이 한 행동은 그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모두를 해하는 일이었다. 과연 그의 아들을 지킨 사람은 아버지였을까. 죽은 세령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던 룸메이트였을까?


창작 수업을 듣던 중 강사님께서 그러셨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조합해서 내어놓는 것이 소설이고 시이고 시나리오라고 하셨다. 그러니 너희는 많이 읽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재조합해서 양념만 더하는 되는 것이라고.

당시의 나는 강사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고 강사의 자질을 의심했었다. 그런 짓은 표절이라고.

시간이 흐른 지금. 이러저러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또 소설을 쓰는 알파고 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분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어 새로운 창작물로 만드는지가 관권이다.


이 작품을 쓴 정유정 작가처럼 풀어낼 수 있다면 아주아주 뛰어난 분석력을 지니게 된 것이리라.


짐작할 만한 이야기였으나 끝을 향해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끝 심이 좋다. 문장의 흡입력은 말도 못 할 정도이다. 다만. 그의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보니 머리 속에서 동선이 자꾸만 꼬인다는 단점이 있다.

출간 도서의 앞쪽에 세령 마을 지도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머릿속에서 미로를 헤매었다. 독서를 끝내고 지도를 보니 세령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령이 와 수목원 젊은 원장과 서원이 살았던 그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