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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12. 2016

놓쳐버린 인연이 그리웠다.

리버스, 미나토 가나에, 김선영 옮김, 비채, 20160704

그것이 동성 친구와 어울리는 일반적인 방법인지, 후카세는 알 길이 없었다. 그때까지 완전히 외톨이였던 건 아니다. 중학생 때 한 달쯤 반 아이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적은 있지만 그 이상으로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다. 다만 초등학생 때부터 단짝이라 부를 만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만약 친구 다섯 명의 이름을 대라고 하면 후카세의 이름을 쓸 사람이 세 명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한명만 고르라고 하나면 아무도 후카세의 이름을 쓰지 않을 것이다. 후카세가 뽑은 단 한 명의 친구는, 후카세의 이름을 다섯 명 안에도 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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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고 서정적인.  달리 말하면 무채색 같은 남자의 여자 친구에게 편지가 온다. 

 ‘ 네 남자 친구는 살인자’라고 쓰인. 

 대학 졸업쯤 짧은 세미나 수업을 함께 들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이 여행을 가게 되고, 그중 한 명이 음주운전에 운전미숙으로 산길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그리고 남겨진 네 명의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살인자다’라고 쓰인 동일한 편지가 도착한다. 왕래가 없던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그 편지 때문이었다. 

 원체 조용하고 소심하던 후카세는 유명을 달리한 히로사와가 단짝이라고 할만한 첫 번째 친구였고,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계속 혼자였던 후카세에게 동성친구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고 그가 만들어준 커피가 특별했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던 친구였기에 후카세는 그의 죽음이 더욱 힘들었다. 이 작품은 후카세가 히로사와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추리소설인 듯, 싶지만 성장소설 같고, 성장소설인 듯 싶지만 치유 소설 같기도 했다. 계속 혼자였던 남자에게 동성의 친구가 생겼고 얼마 안 가 사고로 그가 죽게 된다.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 괴로웠지만, 결국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큰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 작품이 미스터리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후카세와 같았다. 

 단짝이라고 부를만한 친구는 없었고, 중학교 때는 조금 심한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 천방지축이었지만 친구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친구는 항상 언니뿐이었다. 동성의 언니가 있다는 걸 감사했지만, 언니가 있어서 더 친구 사귀는 일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같다.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나보다 윗 학년이었던 언니의 교실에서 언니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언니의 친구와 언니와 함께 하교를 했었다. 내 친구는 없었다. 언제나 언니만 기다렸고,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를 사귀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후카세처럼 친한 친구 몇 명을 꼽으라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베스트 프랜드라고 할만한 친구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새로운 반이 편성되고 함께 어울리게 된 친구가 다섯 명이 있었는데, 나는 어쩐지 그 친구들보다는 조용하고 공부 잘하던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갔다. 내 무리가 겨우 만들어지려던 찰나였는데 그걸 붙잡지 못했던 거다. 그 무리의 친구들과 한 번은 놀이동산에 놀러 가기로 했었는데, 당일 오전, 뚱뚱했던 나는 입을 옷이 마땋치 않아서 가기가 싫어졌다. 내 멋대로. 그래서 당일 약속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것이 내 학창 시절 왕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1년, 그리고 3학년 때까지 찔끔찔끔 1년. 중학교 시절은 왕따의 추억이었다. 내가 놀이동산에 갔었더라면 그 아이들과 단짝이 되었을까? 지금까지도 동창생이라고 하며 잘 지내고 있었을까?

       

  내가 놓쳐버린 인연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당시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학생 때다. 

 5학년 때였나?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당시 선생님의 배려였는지 내 짝과 뒷자리의 아이들이 모두 모범생이었다. 게다가 착하기까지 한. 우리 넷은 친해지려는 찰나였고, 공부가 떨어지는 나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던 남학생이 있었다. 한쪽 뺨에 크게 데인 흉터 같은 반점이 있던 아이였는데 친절히 알려주는 수학 문제를 내가 못 알아들어도 꾸준하게 설명해 주던 천사 같은 아이였다.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에 그 아이들이 나와 어울려 주는 것이 나의 성적을 몰라는 그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부끄러웠고 나 스스로 떨어져 나왔다. 내가 그 아이들과 함께 계속 어울렸다면 나도 우등생 근처에는 갈 수 있었으려나. 아니면 친구 모임이라던지, 동창회라던지 이런 것들을 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언제나 있다. 

 

  내가 놓쳐버린 인연들, 나 스스로 놓친 이 기회들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가 힘들고 무섭다. 그리고 여전히 단짝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또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해서 먼저 손을 내는 것도,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무섭다.      

 

후카세는 꼭 나 같았다. 

겨우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좋아하는 일을 하나 찾은 아이, 

친구도 없고, 그저 남들이 후카세가 내리는 커피를 좋아해 주니 그것이라도 해 주면서 인간관계의 중심에 있고 싶은 아이, 꼭 나 같았다. 한껏 허세를 부리면서 난 괜찮아. 나 친구 많아라고 부풀려서 말하지만 실상 인간관계가 두려워 항상 혼자 있는 아이, 동질감 때문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조금 허무했다.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후카세가, 내가 지키지 못한 인연이 안타까워서 허무했다.      


 앞으로도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항상 약자일 것이다. 

단짝이 없는 내가 안타까워서 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지만, 평생의 내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결코 그 관계를 잘 이끌어 가는 방법을 모르는 나는 항상 약자이고 두려울 것이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게 삶이라면 감수해야 할 것이다. 

후카세처럼 잃어버린 관계에서 상처를 치유를 해가면서,

      

오래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근교가 재개발에 들어간다.  

이미 주민 이주는 시작됐고, 곳곳에는 철거예정이라는 스티커가 붙었다. 전부 철거되기 전에 한 번쯤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그곳을 가보고 싶어 들렀다. 안타까웠던 내 초등학교의 인연들은 지역 재개발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나를 잊었겠지만 내내 혼자 안타까운 나는 아주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친철했던 모범생 무리들이 그리웠다. 또 당시의 소심했던 내가 안쓰러웠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볼 걸, 어린 내가 안타까웠다.     


 처음 가졌던 동성친구를 잃은 후카세와 나의 유년이 안쓰러워 빈집을 지천에 두고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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