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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Feb 14. 2017

안녕, 뿌뿌

19년 뽀삐, 마영신, 씨네21북스

할머니가 돌아가신 해에 엄마는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다. 엄마의 표현으로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 집에서 300만원 대신 데려왔다던 그 작은 녀석은 그 후로 15년이나 우리와 살았다.   

   

 처음 집에 온 날, 잔뜩 주눅들어 있던 녀석은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마자 부억 싱크대 걸레받이 밑으로 쏜살같이 숨어버렸다. 본능적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본인이 가장 안전하게 숨을 곳을 찾은 것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생후 6개월 정도 밖에 안되었던 녀석이 그 6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서너곳을 옮겨다녔으니 눈치가 얼마나 빤했겠는가. 여기는 오래있을 수 있을지, 새로운 사람들은 어떨지 나름의 탐색을 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이 된 녀석은 한동안 소리를 내지 않아서 짖지 못하는 강아지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기회만 있으면 싱크대 밑으로, 장롱 밑으로 숨어들어가서 못나오기가 태반이었고 아무리 작다고 해도 성질이 앙칼져서는 쉽게 다가 오지도 않았다.

 

 아직 어렸던 뿌뿌가 소리를 낸건 오빠가 개키려고 하는 이불이 눈앞에 벌럭거리자 그걸 물고 늘어지면서다. 오빠는 이불을 개려던 상황이었고 뿌뿌는그 이불 끝자락을 물고 대롱대롱 매달리는 형세가 되었는데, 아직 아기여서 아귀힘이 약했던 뿌뿌가 얼굴을 바닥에 찧고 떨어지면서 “엥” 하고 울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그때서야 뿌뿌가 소리를 낼 줄 아는 강아지라고 안도했었다.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몸이 손바닥에 쏙 들어오던 아주 작았던 뿌뿌는 아이부터 노년까지 그렇게 우리와 15년을 살았다.   크고 작은 사건들도 많았고 다른 주인들처럼 강아지를 끔찍히 여기진 않았지만 우리 가족들은 한번도 그 아이를 다른 가족에게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집은, 내가 기억하는 한 1번밖에 이사를 하지 않았다. 뿌뿌가 우리집에 오고 3년가량 되었을 때 였던 것 같은데, 이사갈 집과  현재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사이에 한달이라는 시간이 붕 뜨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뿔뿔히 흩어졌고, 뿌뿌는 한달간 이모네 집에 위탁하기로 했는데, 뿌뿌를 이모에게 데려다 주던 언니의 말에 따르면 처음 타본 지하철에서 멀미를 하면서도 울지도 않고 조용하더란다. 필시 뿌뿌는 제 주인이 자신을 버리려 가는줄 알았나 보다. 이모에게 뿌뿌를 안기고 돌아오면서 언니는 내내 울었다고 했다.

  이모네 집에 있는 한달동안 뿌뿌는 종일 베란다만 보면서 울었다고, 이모는 언넝 데려가라면서 아직 입주기한도 되지 않은 우리가족에게 안타까움을 호소했는데, 드디어 한달 후에 집에 온 뿌뿌를 보고 우리는 모두 놀랐다. 작고 귀염성있던 얼굴이 한달새 쭈끌쭈글하니 10년은 늙고, 두 눈사이에 흰색 털이 잔뜩 자라있었다. 제 주인들이 자신을 버린 줄 알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인지, 매일 베란다에서 울던 아이가 스트레스로 털색이 변해서 온것이다. 다시 우리곁에 온 뿌뿌는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다리에 대고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그리고 나 며칠종이란 종이는 다 씹어놓고, 온집안에 대소변을 봐둔후에, 다시 예전의 뿌뿌로 돌아왔는데. 당시 엄마는 크게 뿌뿌를 혼내지도 않고, 그저 그냥 두었다. 아마도 식구들을 떨어졌던 뿌뿌가 한참 심통을 부리게 놔뒀던 것도 같다.


다시 돌아온 뿌뿌는 그렇게 우리와 12년을 더 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집에 가면 항상 마중나왔고.  늙고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우리에게는 귀여운 아기였다. 19년을 키운 강아지에 대한 웹툰을 보면서 뿌뿌 생각이 나서 울컥울컥했다. .반려견을 오랫동안 키운 사람이라면 "19년뽀삐'를 보면서 공감가는 내용에 고개가 끄덖여질것이다.  

 뿌뿌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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