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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Feb 07. 2017

애너벨, 애너벨,  아. 웨인.

애너벨, 캐슬린 윈터, 송 섬별 역, 자음과 모음, 20170104

2016년과 2017년에 걸쳐서 읽은 작품은 [애너벨]이다. 


대학 졸업 여행을 겸해 친구들과 태국으로 여행을 갔더랬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저가항공이나 여행정보들이 많지 않아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패키지여행뿐이었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는 그나마 저렴한 가격이었으니.

오전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중년의 커플들과 일정을 함께 했는데, 당시의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트랜스젠더 쇼였다. 

 여성의 특성을 가진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천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함께 사진 촬영도 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의 모호한 구분 속에, 다들 찍으니 나도 한 장, 이러면서 그들의 성을 상품화하는데 나도 기여했었다. 

 그리고 수일이 지나 철이 들고, 젠더에 대한 개념이 다시 정립되면서 나는 당시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뭐가 좋은 거라고 그렇게 사진을 찍고 신기하게 바라봤을까, 사회적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던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본인이 원해서 쇼의 무대에 서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텐데. 


 애너벨도 사회적 통념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이고 그녀였던 애너벨에게  토마시나 선생님이 없었다면, 윌리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캐나다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웅동체로 태어난 웨인이고 애너벨이었던 그와 그녀의 이야기. 

캐나다의 래브란도 라는 곳은 척박한 곳이라고 한다. 9월부터 6월까지 겨울이 이어지고, 남자들은 겨울 동안 트랩 라인에 나가 사냥을 한다. 그동안 여자들은 집안을 단속하고 아이들을 키운다. 이런 고즈넉한 공간에 웨인 블레이크면서 애너벨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한 그 아이.  


애너벨은 캐나다의 래브라도와 세인트 존스를 무대로 웨인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느끼게 되는 혼란과 부모의 흔들림, 아이의 정체성을 찾아 주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친구였던 토마시나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이야기한다. 


 아들을 원했던 웨인의 아버지인 트레드웨이는 남자와 여자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남자아이로 키우기로 한다. 그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그는 아이가 커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름 대신 아들이라는 명칭으로 그를 불었으며, 그의 아내 재신타는 아들 속에 숨겨진 딸아이의 모습을 꺼내지 못해 전전긍긍해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여성의 성징을 더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트레드웨이는 더욱더 그를 아들이라 부르고, 재신타는 아이의 모습을 외면하고자 한다. 2차 성장이 나타나 아이의 배에 생리혈이 들어차는 것도, 발바닥의 피부가 벗겨지는 것도 웨인은 그저 병의 일환이거니 하지만.. 생리혈이 가득 든 그의 뱃속에는 그것 말고도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내내 두려워하게 될 존재도 함께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는 그의 작은 뱃속에 태아가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뱃속의 생리혈을 꺼내면서 더 이상 크지 못한 태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부모는 여전히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부모로서 내 아이의 문제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괴로움 일지. 웨인/애너벨의 쓸쓸하고 불확실한 삶을 그린 작가의 솜씨가 대단했다. 차분했고 대단치 않은 일을 서술하듯이 우리가 얼마나 이분법적 삶에 속해 있는가를 은근히 알려줬다. 여자 아니면 남자, 너 아니면 나, 이것 아니면 저것, 중간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배척하는 우리들의 모습.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작가는 우리의 어두운 일면을 이야기해준다. 



 재신타는 언제나 도망가고 싶어 하는 사람, 격한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강렬한 출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뉴멕시코의 사막으로 달려가 인적 없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상상을 했고, 세인트존스로 돌아가 부엌이 딸린 조그만 방을 얻은 뒤 아기에게 귀리와 조그만 당근으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스무 살이 아니라 서른네 살이었고, 탈출이라는 낭만 너머에, 희열에 찬 첫 비행 너머에, 언제나 다음 날의 일상적이 고단함, 그녀가 도망쳐왔다고 생각한 바로그 고단함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p58




다행히 웨인이면서 애너벨이었던 아이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던 선생님이 있었다. 쉽지 않은 삶이 지만, 그의 길을 바로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어둡고 힘들지많은 않게 삶을 살아낼 것이다. 여자로서든 남자로서든. 

 

 사람들은 대부분 갖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러하고. 

그렇지만 이렇게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사회통념상 갖지 말아야 할 것이 함께 있으므로.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는 아주 흔한 명언이 뜬금없이 깊게 다가왔다. 두 가지 모두를 원하지 않았지만 갖게 된 아이의 인생. 책의 주제와 소재에 아주 반하는 명언일지라도 작품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다. 나의 짧은 감상이. 

신년을 맞이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어둡고, 무거웠던 작품이었으나 나에게는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웨인이자 애너벨인 그와 그녀의 삶을 응원하면서  뜬금없는 명언을 주었던 작품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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