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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27. 2017

무소의 뿔처럼 살아내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해냄, 20161216

93년도에 나온 이 책이 이렇게 진보적이었나?

초판이 출판되고 나서 무려 23년이나 지났는데,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여전히 여성에게 폭력적인 사회는 거짓말 처럼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책보다 영화를 먼저 접했던 작품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방영해주는 영화를 스치 듯 보고, 원작 소설을 읽은 건 대학에 입학해서였다.

당시의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때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근사한 직장에 근사한 삶을 영위하면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학생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궁금해진다.


 출간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작가를 한순간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는 이 책이 왜, 아직도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지는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작품에서처럼 드라마틱한 사건사고가 없더라도 우리의, 여성의 삶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있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집안으로 들어서면, 집안을 돌보고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는 가정주부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93년의 여성들이 가정주부이기를 강요받았다면, 지금의 여성들은 돈도 잘벌고 가정도 잘 꾸려야 하는 슈퍼맘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신세계적인 여성관의 등장이랄까. 무엇이든 다 잘해야만 하는 여성들.

 하. 갑갑하다.


 나는 아이가 없는 8년차 주부다.

신혼 초에는 꽤 오랜시간 주말부부, 아니 월말부부라고 해야 맞을까? 지방 근무를 하는 남편을 둔 덕에 혼자의 생활을 누다. 서른 넘게 부모와 살다 처음 혼자사는 것이 무섭기도 했지만, 독립은 남편이라는 보호자를 둔 덕에 크게 반대에 부딫히지는 않았다.

 가끔 만나는 남편과의 생활은 소꿉장난처럼 그저 좋았고, 평일에는 온전한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활이 꽤 만족 스러웠다. 아니 오히려 퇴근 후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몸살이 날 정도였다.  내 공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누군가와 함께 살 때는 누려보지 못한 자유였다.

 그러다 남편의 지방근무가 끝나면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그 때부터 나의 주부본성? 강요받은 주부?의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나 역시 일을 하고 있지만, 남편보다 먼저 퇴근해서 밥상을 차려야 할 것만 같았고, 남편의 와이셔츠는 꼭 집에서 다려야만 할것 같았다.  시댁의 경조사는 잘 챙겨서 착한 며느리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니 들어야말 할 것 같았다. 나 역시 녹녹치 않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편 뒷바라지 잘하는 여자도 되고 싶었던 것다. 아이러니 하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여자로서의 의무에대한 반감과 여자로서의 의무에 대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갈망.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런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종종 숨이 막힌다. 게다가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에게 참을수 없이 화가 나는 날들이 많아 지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생을 살라고 가르쳤고,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지, 그러니 우리가 부딪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단지 나는 이제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피곤할 뿐이야. 정말 피곤할 뿐이야.



피곤하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의무에 쩔어서 내 몸을 스스로 피곤하게 만드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고마움을 모르는 남편에게도, 남편 챙기라면서 바리바리 무언가를 싸주는 시집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내내 피곤하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만 피곤한건 아니다.  모두의 여성들이  이렇게 힘들다면 무언가 바로잡혀야되지 않나.  하는 계몽의식 비슷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죽일수도. 이혼을 할 수도 없지만.  다만 변해야한다.  변해야한다는 마음 속 물결의 파동이 점점 강해져갔다.


별거 아니란다. 정말 변거 아니란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수도없이 일어난단다. 네가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러면 너도 알게 된다.  네가 지금 느끼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울 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산다는 건 바보 같은 짓거리들의 반복인 줄을 알게 될거란다. 자,  이제 울음을 그치고 물러서렴.  그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그 밖을 향해서


결혼 생활 어디를 찾아봐도 내가 없었어.  난 한때는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고 꽤 칭찬도 받았던 괜찮은 여학생이었는데. . . . . .  그 남자의 학비가 없으면 나는 어느덧 그남자의 학비가 되고.  그가 배가 고프면 나는 그 남자의 밥상이 되고, 그 남자의 커피랑 재떨이가 되고,  아이들의 젖이 되고, 빨래가 되고. . .


하지만 산다는 건 언제나 말해야 할 곳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말을 꺼내는 실수의 반복이었다


생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불어닥치지 않았던가. 언제너 제멋대로 그녀가 어떤 준비도 하기 전에 생은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 다른 골목길로 내팽겨치지 않았던가


웃고 있는 사람이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듯이 울고 있다고 언제나 슬픈 것은 아닐 것이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접어두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것이다


남녀 간 사랑이란건 아무리 길어야 3년이면 끝난다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했다.


 치열하게 살게 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든 자매들에게 권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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