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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an 04. 2017

우리의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시그널 대본집, 김은희, 비단숲 20161127

미국 드라마 CSI를 즐겨봤었다. 

내가 접한 최초의 미국 드라마라고 할만한 작품이었는데,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케이블 TV에서 CSI를 방영하는 날이면 주야장천 앉아서 TV만 보고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취향인데 나는 수사물을 좋아하나 보다. 범죄 수사물이 꽤 흥미롭다. 


 근래에 TVN에서 히트를 친 드라마 중 [시그널]이란 작품이 있다. 

케이블 방송사에도 여러 드라마를 만들고 있고, 공중파 방송만 있을 때 보다고 소재가 다양해졌다. 개중에 범죄 수사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았던 작품이 바로 시그널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방연 당시에는 혼자 보기에 너무 무서워서 못 보고 있다. 종영이 되고 난 이후에 다시 보기로 정주행한 작품이다. 뒷골이 서늘해지는 기분, 화면을 보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현관문과 창문의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시간의 평행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면서 당시의 인물들이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과거의 형사와 현재의 형사들은 긴밀한 관계로 엮이고 그 주변의 인물들은 사건이 변함에 따라 사라지거나  다시 살아나거나 한다. 시간여행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종종 있었다.   [나인]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였는데, 아, 물론 그 드라마도 아주 재미나게 봤다. 

 [시그널]에서도 시간이라는 장치를 쓰긴 했지만, 처음에는 아주 헷갈려서 빙빙 돌았다.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하고, 현재가 변하면 과거도 변한다. 그리고 서로 이어지는 시간들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었는데, 정주행 하면서 한번 보고, 출간된 대본집으로 보니 아하... 싶은 장면들도 있더라. 


 드라마가 워낙 재미있어서 처음으로 대본집이라는 것을 구입했다. 

 영상으로 제작되기 전의 문장. 

 항상 느끼는 감정이지만 글은 참 쉽다. 

 글은 한 줄이면 되는 것을 영상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준비와 노력이 합쳐져서 한 장면이 나온다. 


가령 이런 것들, 


인물 1: (화난 표정으로,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불러와, 당장 불러오라고.


이런 상황이라고 하자. 

그럼 , 인물 1을 맡은 배우는 잔뜩 화를 내야 하고, 스텝들은 화를 낼 수 있는 세트를 만들어야 하고, 집어던질 수 있는 물건을 준비해야 하며, 불러와야 할 상대역을 준비시켜야 한다. 글은 한 줄인데 영상은 꼬박 하루가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본이라는 것이 참 매력적이더라. 

 드라마, 영화, 쇼, 등등 영상매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본이 필요한데, 또 이 대본만으로는 영상물이 제작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상호 긴밀한 관계여서 둘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참. 끌리더라. 내 글이지만 내 글일 수 없는 작품이 대본인 것 같다. 


  [시그널]의 대본을 보면서 작가는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을  그리고 글로 설명하는 직업이구나 싶었다. 창 착자라기보다는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들은 받아 적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 아닌가 싶었다. 물로 그 그림들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만, 영상으로 본 작품을 글로 읽어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참 재밌더라. 그리고 이 대본의 매력에 한참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인생의 드라마가 몇 편 있는데, 

앞으로 그 드라마들의 대본집을 구입할 생각이다. 

작가들의 글이 어떤 감독을 만나 어떤 영상으로 표현되는지 구경하는 맛도 꽤 재미있다. 


먼저 다음 작품은 내 인생의 드라마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 될 것이다. 

봐도 봐도 그 쫀쫀한 구성과 영상미는 질리지 않는 드라마인데, 얼마나 글은 잘 써놔았겠는가 싶게 기대가 된다. 


시그널 대본집을 모두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번에는 작가의 대본과 영상에 표현된 장면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글이 다가 아니라 영상이 다가 아니라 진정 드라마는 복합예술이다.라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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