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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Dec 07. 2015

타이완을 준비하다

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예담

 결혼 후 꽤  오랫동안 생일에 혼자 여행을 떠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었다. 결혼 전이라면 훌쩍 떠났겠지만,   결혼 후라는 상황이  걸림돌 아닌 걸림돌이 되었다. 혼자보다는 둘이기에 여행이든 휴가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고.  어쩐지 남편의 허락을 구하는 것만 같아서 치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스쳐가는 말처럼 그러나 힘을 실어서 혼자만의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고 치사하지만 홀가분하게  허락을 구했다. 그렇게 사흘간의 여행은 타이베이로 정해졌다.  연일 매스컴에서 소개하는 여행지기도 했고.  Tea에 흥미를 가진 이후로 타이베이는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을 준비하면서 간간이 사모았던 3권의 여행책을 정독하고.  이제는 소설을 읽어 보자 했다



3권의 여행 가이드 책

처음 타이완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 

(만약 이 책을 읽고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이 있다면 재고해보시길 바란다. 잘못된 정보가 너무나 많은, 오류투성이 책이다.)

꽃보다 타이베이

타이베이 일상 산책



한 권의 소설

타이베이의 연인들 



3권의 가이드 북을 메모하면서 여행 일정을 짜고 지하철 노선도를 공부하고 구글링으로 타이베이의 지도를  보고, 당장에라도 타이베이에 도착해도 익숙할 만큼 책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여행 계획을 거의 잡았을 무렵, 드디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500페이지에 닳아는 짧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일본 소설이었기에 금방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는데, 어쩐지 이 500페이지짜리 소설을 열흘이나 걸려서 읽었다. 


 일본과 타이베이를 오가는 배경,

타이완 고속철도사업에 투입되는 다다하루카, 대학시절 타이베이에서 만나 반나절 그녀의 여행 가이드가 되었던 대만인 료렌하오, 타이완 신칸센 프로젝트에 투입된 또 다른 일본인 안자이 마코토와 대만인 호스티스 유키.

종전에 타이베이에서 태어나 자란 하야마 가쓰이치로와  아내 요코, 그들과 학창시절을 보낸 대만인 랴오총

대만 청년 첸웨이즈와 창메이친.

  각각의 인물들이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기반으로 인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다. 단, 반나절만의 만남이 인생의 방향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한순간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들었던 작품이다. 

 여행지에서 로맨스를 꿈 꿀만큼 나는 어리지 않지만, 로맨스가 아닌 어떤 사람을 만나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는 일이다. 누구가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주기를 어쩌면 조금은 바라면서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카처럼



 그를 우연히 발견한 것은 북적이는 강가 거리를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한가롭게 돌아온 후였다. 역으로 향하는 광장으로 들어서자 손님들로 넘쳐나는 뉴러우몐(牛肉麵,소고기국수) 가게가 있었는데, 인도에 늘어선 간이 탁자에서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국수를 후루룩거리고 있었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자기였는지, 아니면 그였는지 알 수는 없다. 그가 묵묵히 면발을 후루룩거리는 모습을 꽤 오랫동안 바라본 것 같기도 하고, 그를 알아챘을 때는 그가 이미 젓가락질을 멈추고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면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채 이쪽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카를 확실하게 기억하는 듯했지만, 아는 사이도 아니니 말을 건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다시 면을 후루룩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의 모습이 몇 번이나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하루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가 뉴러우몐을 먹고 있는 간이 탁자로 걸음을 내디뎠다. 자기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소극적인 유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경우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넬 정도로 적극적인 유형은 절대 아니었다.  

                                         p 70~71


 여러 인물들이 스쳐 지나면서 타이베이의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옴니버스 영화 같은 작품이기도 했다.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닌 그들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처럼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그들의 삶을 살고 시대를 만들어내고 미래를 엮어가고 있었다. 

 여행책에서 보았던 거리와 소설의 거리가  익숙해질 때쯤, 마지막 장을 덮었다. 

 다다 하루카와 료렌하오의 재회장소였던 단수이 강가는 꼭 가보려고 한다. 시끌벅쩍한 항구도시겠지만, 혹시 나도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2015년 10월 22~25일간의 대만 여행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우기를 맞은 대만은 연일 비가 내려 축축했고, 초행 길에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하루카와 로렌하오가 재회했던 단수이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못했으며,

뉴러우몐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비행시간에 쫓겨가며 겨우  맛볼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다시는 대만이라는 나라에 오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 동안, 

다음번 대만 여행을 나도 모르게 계획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천천히, 급하지 않게 돌아보자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만 지도를 보고 있어도 말을 걸어오는 대만인들, 친절한 미소, 청결한 도시,

지역보다도 사람들의 미소가 생각나는 도시였다. 

대만을 다시 가봐야 할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겨우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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