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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Aug 06. 2018

준비해야 할 시간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라즈체스트, 클, 20150630


만성적인 걱정과 끝을 모르는 수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음모가 아닐까 의실될 정도의)기계치적인 무능력등,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모든 흠들이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사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의 마음뿐이었다.

 p 173


한 동안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었던 것도. 엄청나게 일이 바빴던 것도 아니었지만.

일상이 숨이차게 이어졌다.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 씻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밥을 지어 먹는 일상이 숨이찼다.

오래달리기를 겨우겨우 끝내고 결승선에 닿을듯 말듯한 숨참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일상이 숨이 차도록 이어지고 있으니 책을 읽을 여유? 책에 집중할 시간? 이 없다는 핑계들이 끼어들었다.


 오래 전에 구입해두었던 작품이었고,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어서 읽어봐야지 했던 작품이었다. 늙어가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 죽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외동으로 자란 딸은 늙은 부모가 부담스러웠고 늙어가는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능하면 늦추고 싶었지만 준비하지 않았던 그 시간을 왔고. 그들을 돌보면서 그들과이 이별을 했다.

 이것들이 삽화와 함께  실려있는 책이다.


 나는 아름다운 죽음이라든지 편안한 노후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잘 포장된 마케팅 문구인것 같다.

 아마도 오랜시간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아 그 힘듦을 경험해봐서일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떨리게 힘든 일인지 이미 겪어봤기 때문이겠지.


 외할머니셨고 평생 자신의 막내딸이던 우리 엄마와 함께 살았다.

부잣집 외동딸이었던 할머니는 느즈막히 겪게된 일상의 고단함을 담배와 꺽일줄 모르는 자존심으로 버텨내셨던 것 같다. 할머니의 노후를 책임졌던 엄마는 어릴때 부터 공장과 전전하며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할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했을 우리 삼남매는 아직 학생이었고 엄마는 여전히 일을 했다.

매일아침 엄마는 할머니를 씻기고 먹이고 집 청소까지 하고 출근을 했다. 점심은 다시 돌아와 할머니의 점심식사를 챙기고 저녁이면 또 할머니를 씻기고 저녁을 챙기고. 그러면서 우리 삼남매는 다들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엄마의 기분을 맞추는것과 할머니를 돌보는 것. -물론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대부분 장녀인 언니의 몫이었다. 남자들은 오빠나 아빠나 다 하나같이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 - 그러는 사이 우리는 커갔고 할머니는 그렇게 5~6년을 더 누워계시다가 내가 스무살이 되던 해 돌아가셧다.

 나는 혼자 사춘기를 보내면서 엄마와 아빠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모두 커버린 지금. 어른이 된 후에는 부모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색하다. 해야만 하는 당위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면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마와,부모와 친한 자식들의 유대감을 갖은 적이 없으니 이 모든 것들이 힘겹게 느껴진다.


 가끔 시댁에 가면 아버지와 붙어 앉아서 서로를 챙겨가며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시누이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아빠와 그렇게 가깝게 앉아있는 것도 대화를 나눈 것도 너무나 어색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나의 부모가 늙어 내 손길이 필요하게 될 때가.


 나는 부자도 아니고 재정적인 능력도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나는 부모의 문제를 다른 자식들에게만 넘겨두고 싶지않다. 그래서 궁금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비록 다른 나라 이야기라 하더라고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모두 똑같지 않은가.


 부모와 친하지 않은 그녀의 심정을 나 또한 같이 공감했다.

 최대한 부모의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것과 전화가 올 때 마다 긴장한다는 것. 엄마와 친하지 않아서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 나도 그녀도 우리의 부모님들이 열심히 사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고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그녀와 정서적 유대감을 함께 만들지는 못했다. 나의 부모가 또는 남편의 부모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 무섭다. 정서적 유대감은 없지만 그들을 돌봐야 하는 일은 가능하면 아주 먼 훗날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좀 더 세상의 풍파를 겪고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이 나의 곁을 떠나주었으면 좋겠따.

 

 부모와 정서적 유대감이 없음을 나는 항상 나만의 콤플렉스로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왜 부모님을 어색해하나. 이런것들... 나는 못된 년인가. 하는 것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늙어가는 부모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주어야 하는 구나 하는 것도 어렴풋이 알수 있었다

그리고 혹시 내가 죽게 되더라도 짐을 많이 남기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부모의 늙음은 서글프다.

그들이 죽음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내가 부모와 친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아주 오랫동안 그들 모두 내 옆에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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