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떡볶이는 먹고싶어.백세희.흔.20180718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회사가 언제 망할지도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하루에 2~3명씩 퇴사자가 나왔지만 어쩐지 자꾸 남의 일인 것만 같았다. 나는 괜찮겠지. 회사가 어려워졌다는 소리를 상사에게 직접 들었을 때는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것처럼 근심걱정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시간이 흐르니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그나마 회사에 적을 두고 있을 때, 급여가 나올 때 더 놀자는 심상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위기에 대한 현실감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나의 불안은 무거웠다.
이렇게 근근히 버티다 보면 회사 사정도 좋아지겠지. 뭐 잘리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이 또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퇴사자는 계속 늘어갔고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주위를 맴돌았다.
한 직장에 너무 오래 근무해서 일까. 회사가 나이고 내가 회사인 것 같아. 이른 휴가로 떨치고 온 고민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퇴사하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모두들 잘나보였다. 나만 빼고 전부다. 모두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위기였다.
저 사람도 숨 쉬고 사는구나. 별수 없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나한테도 관대해질 수 있어요
실제보다 더 나쁘게 보이려는 '패이킹 배드 facking bad' 결과가 나왔어요. 대부분 회사 복직을 앞둔사람,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패턴인데요, 자신의 현재 상황보다 더 나쁘게 보이려고 하는 거죠. 실재 상태보다 자신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패이킹 굿 facking good'은 주로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결과예요, 자신이 이제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죠. 우울함보다는 불안감, 강박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안감이 높아요
일상의 만족도가 떨어지면 가장 원시적인 퇴행으로 돌아가요,
먹고 자는 본능적인 거로요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해결할 수 있어요. 자신을 알고자 하지 않으면서 '내가 왜 이러지' 라고만 생각하면 안 돼요
모든 것을 너무 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정에 중점을 두는 거죠.' 아무렴 뭐 어때' 라는 생각이 중요해요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대학을 가겠지만, 그 후 내가 어떤 관심사를 갖는지에 따라 깊이와 넓이는 정말 다양해지죠, 고둥학교 때의 성적이 나머지 인생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저 사람이랑 나랑 멀어지게 될 거야' 라는 생각에 확인을 시작하죠. 직접 물어보거나, 간접적인 나만의 행동으로요. 상대가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죠
나를 편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는 건 중요해요
늘 부분과 전체를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이 사람 전체가 다 마음에 들고,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전체가 싫어지는건 아니잖아요
사람을 종합적으로 보고 나서 판단하셨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다 여러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게 전부다.
그걸 가지고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거나 그만두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새로운 모임을 갔는데 아무도 제게 관심이 없으면 미칠 거 같아요, 제 가치의 기준을 이성에 두고 제가 그들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평가를 기다려요. 더 웃긴 건 제가 남자들한테 아무런 이성적 관심이 없는데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히스테리성 성격장애
이럴 때 보통 두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요. 하나는 내 매력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야한 옷을 입거나 근육을 키우는 식이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여기면서 자책해요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만나면 기죽고 나보다 열등한 사람을 만나면 당당하고 편안해지는 내가 너무 싫다.
저 이중적이라서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해요, 배재하고
언제부턴가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위축되지 말라는 말에 진절머리를 내는 나를 발견했다
가장 힘이 들 때 옆에서 '힘내'라고 말하면 멱살을 쥐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도 삶은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같다.
받아들이거나 내려놓는 건 삶의 특정한 시기에만 꺼내올 태도가 아니라 평생 살아가며 연습해야 할 과제라는 느낌이 든다.
보잘것 없는 내게 더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하루에 하나씩 뭔가를 알거나 깨달아가길 바랄뿐.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에게 끝없이 털어놓은 것만큼 고문도 없다. 나나 상대에게 모두 의미 없는 감정 소모의 되풀이가 될 뿐이다.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누지 않는다는 건, 결국 얼어붙은 성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함께는 이타심이고, 결국 이타심은 이기심을 구원한다. 나로 시작하여 우리로 끝나게 하니까,
나와 함께하려는 너에게 감동해서, 나를 알아주는 너 없이는 안 되겠어서, 함께를 택하게 되니까.
함께 오해하고 나누고 공감하고 멀어지면서 현재를 살아나가게 하니까, 그게 어두운 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안도의 숨을 쉬어나갈 방법이 아닐까 싶다.
e-book으로 읽어서 페이지가 없는 발췌문이다.
꽤 많이 형광팬을 그어두었고, 이건 정말 내 마음같다. 그래 이런 대답을 원했어. 같은 긍정적인 맞장구와 이 사람 너무 우울한데, 극단적이야 같은 양극의 감정이 도는 에세이다.
제목도 너무 기가막히게 지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다니. 생활밀착형 정신과 상담 스토리라고 할수 있겠다. 가벼운 우울증상을 내내 가지고 있던 저자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써내려간 기록들과 그녀의 짧은 수필들이 실려있다.
누구나 얼마만큼의 우울감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잘 달래서 살아가느냐 아니면 성난 황소처럼 그것에 잡혀먹희느냐는 본인에 달렸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정신과 상담일지는 공감과 부정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고. 저자의 에세이들은 젊은 그녀의 감성으로 관찰을 참 잘 했네 싶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고 정말 드러내기 싫은 상황들에 대한 묘사도 있다. 도서의 카피처럼 죽고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을 때 읽어보면 위로가 될 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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