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연애 초기만 해도 (자기도 나름 엄청 고민을 하고는) 신이 나서는 내게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를 생일 선물로 사준다던 그였다. 맘에 안 드는 선물을 받느니, 그냥 원하는 걸 직접 말하게 되었다. 우리 성격에 가장 안성맞춤인 선물 정책이긴 했는데, 종종 그다지 낭만적이진 않구나 생각했다. 한 번은 출장 차 미국에 간 남편에게 연락해서 알아서 생일선물을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평소에 선물은 “작고, 예쁘고, 반짝이고, 쓸데없는 것”을 원한다고 알려줬다.) 그때 선물 받은 것이 그 티파니 팔찌였다. 내가 “이 거 살래!”하지 않고 처음으로 오빠가 직접 골라준 선물이었다.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과 같은 상류사회의 상징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내게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
"어떻게 오빠가 이런 센스가 있지??!!" 작은 스마일 모양의 한쪽 면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쪼르륵 세팅된 팔찌는 정말이지 내 맘에 쏙 들었다. 한국에서 샀으면 가격도 훨씬 비쌌을 텐데, 미국에서 샀으니 20만 원이 넘게 절약한 셈이었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옐로 골드 색상이 참 너무 노란색도 아니고 적당히 노란 것이 동양인 피부에 잘 어울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브랜드에서 귀금속을 사나 보다 했다. 은색 계열의 액세서리를 착용할 때는 빼고는 거의 매일같이 티파니 팔찌를 하고 다녔다. 그만큼 이 팔찌를 사랑했다.
아비장에서의 2년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를 준비하는데, 가구며 전자제품을 팔고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중고가구 가게를 하는 이가 와서 대부분의 가구를 한 번에 사기로 해 다행이었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등 전자제품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흥정해서 파느라 혼을 쏙 뺐다. 마지막 일주일은 침대와 주요 가구를 팔고 바닥에 요가매트를 깔아 놓고 잤다. 팔지 못한 짐은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현지 돈도 주변에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했다. 특히 출발 전에 갑자기 코로나 음성 확인 결과서가 의무화되면서 급하게 검사를 하느라 아주 혼을 빼놨다. 여러 번 확인하며 짐을 쌓는데 차마 그걸 빼먹었을 줄이야.
한국에 도착해서 액세서리 상자를 꺼냈는데 곧 팔찌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짐을 여기저기 뒤져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아비장에서 팔찌를 본 기억은 나는데 챙긴 기억이 안 난다. 게다가 결혼선물로 알리슨이 사준 다이아 귀걸이도 보이지가 않았다. 귀걸이와 팔찌를 평소 별도의 상자에 보관 중이었는데 딱 그 제품만 없는 거였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내 실수였다. 가슴에 구멍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주인에게 웟츠앱으로 연락해서 혹시 내가 놓고 온 것이 없는지 물었지만, 없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떻게 그렇게 소중한 걸 잃어버릴 수가 있지. 유럽여행을 하면서도 소매치기 한 번 안 당해봤던 나였다. 지갑이나 핸드폰을 잃어버린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잠을 자다 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잃어버린 티파니 팔찌를 생각했다.
남편은 크게 마음을 쓰지 말라고 했다. 생각처럼 되지가 않았다. 내가 챙겨 왔는데 혹시 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짐을 뒤지고 쑤시고 난장판을 만들었다. 알리슨에게 내가 귀걸이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이삼 일인가를 괴로워하다가, 보석상자를 정리를 하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미 이렇게 주얼리가 많이 있는데, 왜 있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없는 것만 생각하고 있지?”. 우리 삶에는 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게 마련 아닌가. 그런데 내 삶에 부족한 것만 생각하며 살면 얼마나 불행할까? 티파니 팔찌는 잃어버렸지만, 결혼을 축하해준 알리슨의 마음과, 혼자서 생일선물을 골라준 남편의 마음은 잘 챙기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잃어버린 것보다 잘 챙긴 것이 더 많았다. 정말이지 마법 같이 순식간에 텅 빈 것 같았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도. 앞으로는 다신 잃어버리지 말아야지.